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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꼭 필요한 의료부터 보장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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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내과)

정부는 최근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 강화 대책을 발표했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선별급여’ 제도의 도입이다. 의학적 필요성이 낮으나 환자 부담이 높은 고가의료, 임상 근거 부족으로 비용효과 검증이 어려운 최신의료, 치료효과 개선보다는 의료진 및 환자 편의 증진 목적에서 행하는 의료를 선별의료로 정의하고 있다. 그동안 보험이 안 돼 환자가 전액 부담하던 의료비의 대부분이 이 범주에 속한다. 건보의 보장성을 높인다는 점에는 환영할 일이지만, 이 정책이 지속 가능한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선별의료의 기준이 보다 명확해져야 한다. 정부가 선별의료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 캡슐내시경을 보자. 이는 의학적 필요성이 낮으나 환자 부담이 높거나, 편의 증진 목적의 의료로 간주돼 필수의료가 아닌 선별의료로 분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상검사로 진단하기 어려운 소장에 발생한 출혈이나 질환은 위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으로는 진단할 수 없고 캡슐내시경이 유일한 진단법이다. 해당 질환을 가진 환자에게는 필수 의료행위임에도 어떤 기준으로 선별의료로 분류되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환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 의료기술은 모두 필수의료로 분류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행정당국이 어떤 근거자료와 원칙에 의해 필수와 선별의료를 구분했는지 국민들에게 밝히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임상 근거가 부족한 의약품 관리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 개발자의 주장만 믿고 제대로 된 평가를 거치지 않고 제도권에 진입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정되면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가 생길 위험이 있다. 신약이 나왔다고 알려지기만 하면 난치병 환자들은 당장에라도 쓰고 싶어 한다. 신약을 빨리 허가해 주기 위해 검증 절차를 적당히 운영할 수도 없고, 또 완벽한 검증을 위해 시간을 무한히 지연시키고만 있을 수도 없다.

 선진국은 임상연구가 가능한 의료기관의 전문의에 국한해 추가적인 연구 목적으로 임상 근거가 부족한 약을 한시적으로 쓰게 허가하고 일정 기간 후 재평가해 필수의료 전환 여부를 정한다. 이 경우 비용은 건강보험에서 부담한다. 또는 사용을 허가하되 비용은 이해당사자인 건강보험공단과 제약회사가 분담하고 재평가한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한 정부안은 임상 근거가 부족한 신약을 모든 의사가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고, 그 비용도 환자가 대부분(50~80%)을 부담하게 한다. 이는 의약품 관리의 기본 틀을 혼란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제도의 지속 가능성도 따져야 한다. 정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에 2017년까지 9조원이 들 것이라 전망한다. 우선은 건강보험 누적적립금 4조6000억원으로 충당하겠다 했을 뿐 나머지 재원 대책이 없다. 적립금은 한 해 건보 지출 50조원의 10% 정도에 불과하다. 인구가 고령화되고 고가의 신약 및 신의료기술이 홍수처럼 밀려오고 있기 때문에 건보 재정은 언제든지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한 연구기관의 추계에 의하면 2030년에 건강보험은 28조원의 누적적자 상태에 빠진다고 한다. 누적적립금에 근거한 정책은 사상누각이 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재정적으로 지속 가능하려면 어떤 치료법이 최선인지를 끊임없이 재평가해 기존 의료기술 중에서 비용효율성이 낮은 것을 퇴출하고 여기서 재원을 확보해 신의료기술에 쓰면 된다.

 의료비 걱정을 크게 하지 않고 국민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필수의료 중심으로 의료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적절하다. 또 필수의료와 선별의료의 구분이 명확해야 하고 임상 근거가 부족한 의약품 관리에 혼선이 없어야 한다.

허대석 서울대 의대 교수(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