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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즐겨 읽기] 독과 약 '두 얼굴' 곤충의 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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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살아있는 모든 것의 정복자 곤충

메이 R 베렌바움 지음, 윤소영 옮김

다른세상, 463쪽, 2만원

가까이 다가오면 귀찮은 것이 벌레다. 물거나 쏘고, 스멀스멀 몸 위를 기분 나쁘게 기어다니며, 독을 지니거나 병을 옮기기도 한다.

미국 일리노이대 곤충학과 교수인 지은이에 따르면 과거 전쟁에선 곤충이 폭탄이나 총알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이는 발진티푸스를 옮겨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 군대를 괴멸시켰다. 1854년 크림전쟁 때 프랑스군은 전상으로 2만 명의 병력을 잃었으나 발진티푸스로는 5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

지은이는 교전 당사자들이 서로 죽인 수가 발진티푸스로 목숨을 잃은 수보다 많은 첫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이라고 주장한다. 또 벼룩은 흑사병을 퍼뜨리고 모기는 말라리아.황열.학질을 옮겨 엄청난 인구를 죽음으로 몰았다.

하지만 지은이는 곤충이 실은 인간의 동반자로 긍정적인 영향을 더 많이 끼친다는 점을 적극 강조한다. 인간들이 먹는 음식의 3분의 1은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주는 바람에 생산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등 상세한 과학적 근거와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일종의 곤충 예찬이다.

곤충이 인간에게 명암을 동시에 주는 사례도 있다. 1860년 북아프리카산 포도뿌리혹벌레가 프랑스에 들어왔다. 이 벌레는 프랑스 포도주 3분의 1을 생산할 넓이의 포도밭을 황폐화시켰다. 포도나무 뿌리에 기생하면 충영(벌레혹)이란 것이 생겨 나무 발육이 저해되거나 말라죽기 때문이다. 다행히 과학자들이 이 벌레에 잘 견디는 미국산 포도뿌리를 프랑스산 포도 줄기와 접목해 포도나무를 살리는 방법을 개발한 덕분에 프랑스 포도주 산업은 겨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포도뿌리혹벌레가 기생해 만든 벌레혹은 사실 타닌의 보고다. 타닌은 색소.염료.약품원료 등 산업적으로는 쓰임새가 아주 넓고 다양하다.

"같은 물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된다"는 법구경의 한 구절을 곤충에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겠다.

분류.생리학.행동 등 곤충 이해에 필요한 설명과 나비.매미.바퀴.메뚜기 등 주요 곤충의 특징을 분류별로 소개한 부록이 있어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대중을 위해 쓴 과학책으로 내용이 가볍지 않으면서도 읽기가 쉽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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