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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노트북을 열며

정권교체 실패, 국정원 댓글 때문만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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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미리 밝혀두지만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 정치 개입 의혹을 살 만한 인터넷 댓글을 단 행위를 두둔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민주국가에서 정보기관이 정치 중립 의무를 저버린 게 사실로 판명된다면 관련자는 엄벌에 처해야 하며,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대선 이후 숨죽였던 친노(親盧) 진영이 요즘 국정원 댓글 사건을 계기로 다시 민주당의 전면에 부상하는 건 어딘가 석연치 않다. 친노 진영이 이번 사건을 자신들이 저지른 정치적 실패의 면죄부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 국회에서 목청을 높이고 있는 친노 인사들은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싶은 듯하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캠프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국정원의 공작 때문에 승리를 갈취당했다”는 얘기 말이다. 정서가 이러니 민주당 장외 집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하라”는 구호가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자. 지난해 민주당이 12월 대선만 졌나? 4월 총선도 졌다. 둘 다 똑같은 인사들이 주축이 돼 이끌었던 선거다. 민주당이 개표 직전까지 승리를 낙관했다가 뚜껑을 열어보고 망연자실한 패턴도 둘 다 똑같다. 대선 패배는 이미 총선 때 잉태된 것이다. 총선도 국정원 댓글 때문에 졌다고 할 건가? 시점을 더 넓혀봐도 마찬가지다. 2005년 이후 친노가 주도한 선거치고 한 번이라도 이긴 선거가 있나?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는데도 야당이 정권교체에 실패한 이유를 국정원 댓글에서만 찾는 것은 난센스다. 민주당 대선평가위원회조차 ‘18대 대선 평가보고서’에서 “민주당과 문재인 후보가 상대보다 못해서 포용 가능한 이명박정부의 온건 비판자들을 놓친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결론 내렸다. 위원회는 또 “총선 패배에 대한 검증과 평가를 한 번도 실시하지 않은 채 민주당은 같은 계파의 지도자를 당 대표와 대통령 후보로 뽑았으며 그 과정에서 계파갈등의 부작용이 극명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실패로 이끈 주역들은 이런 평가에 별로 귀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정체불명의 ‘안철수 신당’이 127석의 민주당보다도 지지율이 훨씬 높게 나오는 거다.

 이런 현상은 과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 대선에서 충격적 패배를 당한 한나라당의 구주류는 노무현 대통령의 존재를 도무지 심리적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이들에게 대선 패배의 원인은 이회창 후보가 시대정신을 못 읽어서가 아니라 정치검찰과 결탁한 김대업의 병풍 공작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울분으로 똘똘 뭉쳐 있던 한나라당 구주류는 결국 대통령 탄핵을 결행하면서 자멸의 길로 질주했다. 탄핵 역풍 덕분에 한나라당에서 구주류가 몰락하고 박근혜·이명박이란 ‘새 피’가 부상했으니 역설적으로 탄핵 사태가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된 셈이다. 지금 민주당은 2017년을 향한 쇄신의 길을 걷고 있는가?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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