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글로벌 아이

주시해야 할 오바마의 '기후변화' 의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상복
워싱턴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야심찬 선언을 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거였다. 행정부엔 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당장 규제하라고 지시했다.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대형 프로젝트인 원유 파이프라인 건설조차 재고할 수 있다는 깜짝 발언도 했다. 지구온난화 주범인 온실가스의 추가 배출이 없어야 사업을 승인하겠다는 논리였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 며칠 전부터 백악관 측은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하지만 막상 연설이 끝난 뒤 국내외 언론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미국의 정보감시 실태를 폭로하고 도피한 전직 중앙정보국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이 집중 보도되는 것과 대비를 이뤘다.

 실망이 컸는지 며칠 뒤 방송된 대통령 주례 연설에서도 기후변화가 핵심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구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더워지고 있다”며 “가뭄과 홍수·산불·허리케인 등이 빈번해지는 건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더 늦지 않게 행동할 용기가 있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님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대통령의 의지에 비해 언론의 호응이 약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일종의 연설 피로증이 이유로 꼽힌다. 오바마 대통령이 온갖 이슈를 놓고 연설을 하다 보니 기후변화 같은 대형 의제도 ‘걔 중 하나’로 취급됐다는 설명이다. 야당이 장악한 의회를 설득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기후변화 논쟁은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공통된 분석이다. 주미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은 역사에 남길 유산을 고민하게 마련”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이 기후변화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각도에서 이해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기후변화 관련 규제에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은 소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그런데 그 태도가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다른 현안을 제쳐놓고 기후변화 대책에 대해 우선적으로 합의를 도출했다.

 이런 흐름이 가속화되면 국제사회의 움직임 역시 탄력을 받게 된다. 규제 폭풍이 갑자기 밀어닥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이슈가 논의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심각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지난 정부에서 녹색성장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사회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는지도 의문이다. 아직도 기후변화 하면 왠지 진부한 철학 논쟁 같은 매너리즘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론 철학 논쟁에 안주할 수 없도록 구체적이고 강력한 압력이 다가올 공산이 크다. 국제사회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해지고 있다.

이상복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