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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남아공 상황 듣고 울컥 … 19세 때 정치 눈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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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남아공 케이프타운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을 언급하며 “한사람의 용기가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케이프타운 AP=뉴시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는 19세 대학생이었던 나를 정치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남아공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케이프타운대 연설에서 정치 입문 계기를 공개했다. 넬슨 만델라(95) 전 남아공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처음 알게 되면서 “나는 나보다 더 큰 무엇인가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오바마는 당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옥시덴털 칼리지에 재학 중이었다.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학업보다는 다른 활동을 즐기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벌이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대표 2명이 옥시덴털대를 방문해 전해준 남아공의 흑인차별과 인권탄압 실상은 오바마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오바마는 “마음속에서 뭔가 중요한 것이 꿈틀대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오바마는 마디바(만델라의 존칭)와 알베르트 루툴리, 스티브 비코 같은 저항운동 투사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급기야 정치적 행동에까지 나서게 됐다. 만델라의 편에 서지 않았던 미국 정부의 태도에 실망한 오바마는 미국 기업의 남아공 투자 철회를 촉구하는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오바마는 1981년 2월 대학에서 처음 정치적 연설을 했다. 그는 “당시 내가 느낀 분노와 열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연설 2분 만에 연단에서 끌어내려졌지만 이는 오바마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되는 출발점이 됐다.

 남아공의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 영감을 받아 정치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오바마는 같은 해 뉴욕 컬럼비아대로 옮겨 정치학(국제관계)을 전공으로 삼았다. 어릴 때부터 인종차별과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오바마의 경험은 남아공의 흑인들처럼 차별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오바마는 시카고 흑인빈민지역에서의 지역사회운동가 활동을 거쳐 88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국가의 법과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결과다. 93년부터 시카고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은 그를 통합과 조화의 정신을 강조하는 정치인으로 키워내는 큰 자산이 됐다. 오바마는 일리노이주 상원의원(96년)에 당선해 현실정치에 데뷔했으며 연방 상원의원(2004년)이 된 지 4년 만에 대통령(2008년)에 선출됐다.

 오바마는 케이프타운대 연설에서 “만델라는 한 사람의 용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칭송했다. 또 “젊고 성장하는 대륙 아프리카의 미래는 여전히 평등과 기회균등을 위해 싸운 만델라의 비전에 달려 있다”며 아프리카 청년들에게 위대한 약속의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역설했다.

 오바마는 자신을 정치가로 만든 남아공과 아프리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주겠다”며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의 전력 개발을 위해 160억 달러(약 18조2000억원)를 투자하는 ‘파워 아프리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미 정부가 5년간 70억 달러, 제너럴일렉트릭(GE) 등 미국 민간기업들이 90억 달러를 분담해 2000만 가구와 기업에 추가로 전기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우선 에티오피아·가나·케냐·라이베리아·나이지리아·탄자니아 등 6개국을 집중 지원한다.

 이날 오바마의 연설은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당시 상원의원이 만델라가 종신형을 선고받은 직후인 66년 6월 ‘희망의 물결’이란 주제로 연설한 지 47년 만에 한 것이다. 케네디의 연설은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청년들이 불의와 억압에 항거하고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원동력이 됐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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