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방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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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가랑비가 내리는 어느 오후 학년초의 가정방문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누가 비맞고 질척거리며 가는 사람을 반겨줄까? 오늘은 일찌감치 집으로 들어가 푹 쉬어야겠군.』 유리창을 두들기는 빗줄기를 바라보시던 K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나도 모처럼 쌓인 피로도 풀겸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오늘 간다고 해서 꼬마들이 기다릴텐데 하는 나의 걱정을 지워버리듯빗즐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선생님 하고 부르며 흠뻑 비를 맞은 철이가 길모퉁이의 처마밑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 동네에 오신다고 해서 우리집을 모를까봐 기다리고 있었어요.』철이는 숨찬 목소리로 말했다. 비에 젖은 얼굴이 볼그레 상기되어 있었다.
철이의 손을 꼭쥐고 걸었다. 철이의 다정한 마음이 훈훈하게 느껴왔다. 대문앞에 닿자마자선생님이 오신다고 큰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오늘 선생님이 오신다고 점심도 안먹고 마중나갔다는 엄마의 얘기다.
그후부터는 아무리 먼길이라도 1학년 꼬마들의 가정방문은 꼭 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선생님이 오셨다고 어쩔줄 모르는 부형님들과 골목마다『우리선생님, 오셨다야』 라며 자랑하는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퍼질 땐 먼길을 걸었다는 피곤함도 씻은듯이 사라졌다. <김월정·전남 영암군 영암만 용흉리1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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