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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전 문화재발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금강상류의 충북 영동 깊은 산속에 묻혀온 1천여년전 석탑·부도·비등 4점의 문화재가 조사돼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단국대 박물관은 지난19, 20양일간 영동군 양산면 천태산 속을 뒤져 그같은 유물을 발견하고 국보 내지 보물급의 귀중한 문화재임을 확인했다. 영동·옥천 지방에는 지정문화재가 아직 한점도 없으며 본격적인 조사반의 발길이 미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천태산은 영동과 금산 및 무주를 경계짓는 해발7백m의 높은 산. 우람한 바위로 뒤덮인 절승한 계곡에 신라때의 고찰인 영국사가 있으며 그 주변에 1천년전후의 3층석탑2기, 부도1기및 고려초엽의 천태종과 고승 원각국사비가 산재한다. 조사반장 정영호문화재 전문위원이 이곳의 조사에 나선 것은 최근에 영국사사적기를 입수, 유물이 적지않은 점을 주목한데서 비롯됐다.
사적기에 의하면 고려초의 의천화상(문종의 아들)이 송나라에서 천태종의 종지를 처음 배워와 이곳의 절을 무게 중창하였다고 기록해 있으며, 특히 원각국사비에대해 상세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다.
그러한 점은 곧 이절이 당시 천태종의 대종사이었음을 암시하는것같다고 정교수는 말한다.
원각국사비는 그가 죽은지 10년뒤인 1180년에 세운것으로 총고 2.76m·고려식의 둔중한 거북등위에 점판암의 빗돌(164×107㎝)을 꽂았는데 머릿돌 (봉수)은 굴려 떨어져 동강이 났다.
빗돌 앞뒤로 해서체의 한문이 가득 새겨져 있으나 한쪽이 바스려졌고, 또 낙서 무성이라서 보기 흉하다. 반세기전에 나온 「낭선금석총?」에는 이 비문이 실려있지만 이번 조사에서 오자·낙자가 30여자나 나타나, 그당시 서기에게 부탁해 적어오게 하는 상투적 수집방법에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현재 남은 글자는 1천7백여자로 그중 80%만 가까스로 판독됐다.
그옆 산등성이에 있는 원당형 8각부도탑(총고176무)은 국보로 지정된 흥법사렴거화상탑과 비슷한 통일신라 양식의 것으로 역시 국보급의 유물로 기록된다. 하지만 이 부도탑은 원각국사비보다 활씬 우수한 고격의 것이기 때문에 또다른 고승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각국사는 유골을 장사했다고 비문에 적혀 있으므로 토분을 했지않았나 정교수는 말한다.
절 대웅전 뜰에 있는 3층석탑은 반듯반듯 다듬어 장엄하게 쌓아올린 신라때의 유물이다. 높이 4m에 달하는데 상륜부의 수연·매장·매윤·앙화등이 다 갖춰 있어서 보기드문 완형이다. 옛 탑에서 이같은 부재가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절입구 망탑봉위의 3층석탑 역시 희귀한 양식으로, 고려전기의 것. 자연암석위를 기단으로하여 높이 3미터에 달하는데 보주까지 온전하다.
영국사의 단하나 낡은 건물은 임난후의 것으로 대웅전뿐. 하지만 3백년을 헤아리는 동종및 정위등이 간수돼 있다. 이같이 많은 유물이 남아있음은 워낙 궁벽진데라서 일인의 거친 손길도 미치지 못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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