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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먼저 시진핑과 펑유 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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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왼쪽부터 황병태, 김하중, 이규형.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27일)을 앞두고 중앙일보는 전직 주중대사 3명을 연쇄 인터뷰했다. 이규형(62) 전 주중대사는 시 주석을 가장 최근까지 네 차례 만났다. 2011년 5월 대사로 부임해 그해 7월 김관진 국방부 장관의 방중 때, 같은 해 8월 한·중 수교 20주년 리셉션 때, 지난해 4월 박준영 전남지사의 방중 때 각각 시 주석을 만났다. 2001년 10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중국 대사를 지낸 김하중(66) 전 통일부 장관은 역대 최장수(6년5개월) 주중대사 기록 보유자다. 황병태(78) 전 주중대사는 수교 초창기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영원한 주중대사’로 극찬을 받았다. 3명의 중국통으로부터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 핵심 의제, 북한 핵문제 해법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재구성한 문답.

비슷한 시련 겪어 서로 잘 통할 것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는.

 “한·중 양국이 지나온 20년을 돌아보고 다가올 20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회담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이번 정상회담은 큰 의미가 있다.”(김하중)

 -지난해 4월 최고 지도자가 된 김정은보다 2월에 취임한 박 대통령이 먼저 중국을 방문한다.

 “김정은이 2월 3차 핵실험으로 협박을 하니 중국이 사실상 방중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이달 초 랜초미라지 미·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역 대국에서 세계국가로 등장한 중국은 북핵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태도가 분명해졌다.”(황병태)

 -방중이 성공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가야 할까.

 “중국인들은 만날 때마다 ‘하오펑유(好朋友: 좋은 친구란 뜻)’라고 말하지만 진짜 깊은 친구가 되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과 진짜 마음을 나누는 펑유가 돼야 한다. 중국인들은 전략적 사고에 익숙하다. 박 대통령이 한 번의 정상회담에서 단기적 성과에 너무 집착하지는 말고 길게 봐야 한다. 단번에 중국으로부터 북한을 변화시키거나 압박할 뭔가를 얻어내려고 서두르기보다는 임기 5년간 시 주석의 답방을 포함해 두 번, 세 번 만나서 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이규형)

 “방중 자체는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성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양국이 극복해야 할 많은 난제가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한 번의 만남으로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이번에는 시 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과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친분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김하중)

 -두 정상은 신뢰를 잘 쌓을 수 있을까.

 “시 주석이 내세운 ‘중국몽(中國夢·중국의 꿈)’과 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민행복은 화학적으로 결합될 수 있다. 비슷한 정치적 배경과 시련을 공유한 두 지도자는 서로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다.”(이규형)

 -이번 회담의 최대 이슈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에 대한 중국의 지지 확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문제 등이 중요하게 협의될 것으로 예상된다.”(김하중)

북 변화 이끌 한·중 협력안 마련을

 “신뢰프로세스에 대한 단순한 지지 선언에서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한·중이 최근 북한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공통분모가 커졌다. 김정은이 제멋대로 하지 않도록 이번 회담에서 한·중 공통분모를 더 키워야 한다. 북한을 올바르게 변화시키는 데 더 큰 소통을 해야 한다.”(이규형)

 -한·중 미래비전에 꼭 담아야 할 내용은.

 “미·중 정상이 공개적으로 북한의 핵보유 반대를 선언하면서 북핵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중국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핵무기가 있어도 쓰지 못한다. 북핵은 현 상태에서 밀봉해도 된다. 미래비전에는 ‘비핵화 이후’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유도할지, 한·중이 어떻게 협력할지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살 길을 찾아 나오는 방식으로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제2의 미얀마’가 해법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미 북한이 제2의 미얀마가 돼야 한다고 했다. 시 주석은 북한에 ‘제2의 미얀마가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해야 한다.”(황병태)

 -중국이 최근 북한을 강경하게 대하는 배경은.

 “지난해 12월 이후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켜온 ‘젊은 김정은’에 대해 중국 지도부는 불안해한다. 천방지축하더라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는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문제라고 인식하며 매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따라서 말썽꾸러기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이규형)

 -과거 김정일은 정치국 9인 상무위원(현재는 7명으로 축소됨)을 모두 만났는데.

 “중국 상무위원 전원(9명)이 만났다고 해서 김 위원장을 환대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지만 오히려 당시 중국의 지도자들은 은둔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던 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만난 측면이 강했다. 두세 명만 만날 경우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더 정확하게 관찰하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외국 지도자들은 국가주석·총리·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국회의장에 상당)을 만나는 것이 관례다.”(김하중)

시 주석, 솔직·호방하면서도 세심

 -가까이에서 본 시 주석은 어떤 지도자였나.

 “지난해 8월 31일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리셉션 때 주중 대사관에서는 최소한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당 서열 25위 이내) 정도 인물이 참석하기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당일 나타난 인물은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이었다. 그때 이미 그는 국가주석(올해 3월) 등극이 예정돼 있던 ‘황태자’ 신분이었다. 이처럼 시 주석은 격식보다는 실용성을 매우 중시하는 스타일의 지도자였다.”(이규형)

 -시 주석의 리더십 스타일은.

 “시 주석이 일부 민감한 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어 (외부에서는)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국의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신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시 주석은 호방하면서도 세심하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필요할 때는 바로 그 자리에서 조치를 취하는 결단력 있는 지도자로 기억한다.”(김하중)

  장세정 기자

황병태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을 거쳤다. 통일민주당 부총재와 13, 15대 국회의원, 한국외국어대 총장 등을 역임. 『침몰하는 자본주의』를 4월에 출간.

김하중 서울대 중문과 졸업. 외시 7회. 주일 참사관, 주중 공사, 아태국장을 거쳤다. 김대중정부 때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을, 이명박정부에선 초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올 초 『김하중의 중국 이야기』를 발간.

이규형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외시 8회로 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 중국대사관 정무공사, 외교통상부 대변인, 제2차관, 러시아 대사를 지냈다. 지난달 중국 인민출판사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로 시집 『인연』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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