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문 기자
리틀야구단에서 주전 도약을 노리는 아들에게 내려진 처방은 왼손타자 전향. 내야보다 수비 비중이 떨어지는 좌익수는 타격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왼손타자가 유리하다는 야구계의 상식에 따라 연습을 시작했다. 어색하던 왼손 타석도 몇 달 지나니 제법 익숙하다. 오른손보다 힘은 좀 떨어지지만 스윙 궤적이나 정확도는 큰 차이 없다. 욕심을 내 왼손 투구 연습도 시켜봤다. 결과는 별로다. 부채꼴 범위로만 공을 날리면 되는 타격과는 달리 목표점을 향해 정확히 던져야 하는 투구는 ‘천성(天性)’을 거스르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어려운 변신에 성공한 인물이 LA다저스의 류현진이다. 국내에서 활약할 때 그가 오른손잡이라는 사실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다저스타디움에서 우타자로 멋진 3루타를 날렸을 때, 또는 망중한 속에 빅맥을 집어드는 사진을 보고서 비로소 알려진 일이다. 좌투수의 희귀성을 간파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피나는 훈련을 한 결과라 한다. 여기에는 한국 스포츠스타 탄생에 흔히 나타나는 ‘엄부(嚴父) 코드’도 담겨 있을 듯하다. 다저스 중계진도 “(익숙한) 오른손으로 던지면 120마일(193㎞) 구속이 나올 것”이라는 농담으로 놀라움을 표한다.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19·니혼햄). 류현진이 노력으로 천성까지 바꿨다면 그는 직업 야구에서 양립하기 힘든 투타 겸비의 천성을 갑절의 노력으로 지켜간다. 160㎞의 강속구를 뿌리는 이 신인은 고교 통산 56개의 홈런을 날린 거포이기도 하다. 그는 프로야구사에 유례가 드문 투타 겸업을 선언했다. 투수로 등판하고 쉬는 3∼4일 동안 야수로 나선다. 지난 18일엔 투수 겸 5번 타자로 나왔다. 열광의 뒤편엔 우려도 나온다. 현지 언론들은 “체력도 문제지만 투수와 야수를 번갈아 맡으면 사인부터 헷갈릴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래도 오타니의 의지는 굳건하다.
이들의 도전에 마음의 울림이 이는 건 야구 몬스터를 구경하는 재미와는 좀 다른 차원이다. 전문화라는 허울 속에 우리 삶은 점점 부품화, 기능화되며 다양한 능력계발 기회를 잃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야구만 해도 요즘엔 중간에 나오는 홀드용 투수조차 순서가 다 있다. 공 몇 개 던지면 임무 끝. 얼마 전 한 이닝에 6명의 투수가 교체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투수를 마구 갈아 치운 감독은 1987년 ‘마지막승부’의 선동열이다. 연장 15회까지 4시간56분 동안 홀로 마운드를 지킨 두 영웅 중 하나다.
점점 생산성과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해야 하는 속도의 사회로 흐른다. 그저 우리는 맡은 좁은 영역에서 최고의 효율만 뽑아내면 된다. 숨은 재능을 찾아내 키우고 다양한 영역에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며 느낄 만족감 같은 건 효율성과 전문성이란 큰 파도에 휩쓸려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래서인지 오른손과 왼손을 다 쓰는 류현진, 투수로 쉬는 날 타자로 나오는 오타니 같은 르네상스적 인간의 도전에 더 박수를 보내고 싶은지 모르겠다.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