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속의철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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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독일시민의 「프로페소르」 (교수) 에대한 존경심은 대단하다. 사회적인 명예를 나타내는 호칭중에서 「교수」란 명칭보다 더한것은 없다. 그것은 각하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스위스」 의, 접경도시 「바젤」 의「아우· 슈트라세」가126번지-.
여기의문패는 그러나 그냥「칼·야스퍼스」다. 현대의정신사를 꽃피우고그속에 거목처럼 서있던 「야스퍼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교수」 를 우선하는것이다. 자만해서가 아니라, 굳이 거추장스러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진으로보는 은발의, 너무도곱게늙은 은빛 피부의 얼굴은 「야스퍼스」의 인상을 충분히 연상시켜주고도남는다. 향년86세. 학문에의 심연은 인간을 이처럼 고귀하게 늙도록 만드는것인지-.
불안 소외 허무 절망…「야스퍼스」는 회색의 음조로 오늘의정신적 황폐를 말하고있었다.
『철학의 질문은 답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그답은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한다』-그는 현대의 정신적 공동속에서 끊임없이질문하고 답하다가사라졌다.
최근 그의 논문에서 눈에 띄는것은 이기술시대에의 준엄한경종이었다. 『여러민족은 그들자신이 공업국으로 발전해가는 일보다 더중요한것이 없는것으로 생각한다. 이런곳일수록 문화적인전통은 매몰해가고있다』-「야스퍼스」가 생각하는 이인간의 위기를 건져주는것은 오로지종교이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와 불교는, 아니미신마저도 여러 시대를통해 진리를 간직해왔다』 고 「야스퍼스」는 갈파했다.
그의 동양에대한 관심은 서재의 장서를 보아도 알수있다. 그는 중국에관한 서고를 따로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언젠가 한국의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오늘의 중국은 『중국인 없는 중국』이라고 말한것이 기억난다. 그는 도리어『오늘의 한국에서 중국인을 찾아 볼수있을까요?』 하고 반문했다고한다. 몹시인상깊은말이었다. 그의말이 얼마나 적중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에의호의는 짐작할수 있다.
그가동양에 어떤 경의를 품었다면 그의 생애를 움직여준 한「에피소드」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독일에서 「나찌」에 체포되었을때, 일본인의 호의로 석방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일본인의 그에대한 존경심은 동맹국이던 독일을 설득했을것이라는 얘기이다.「야스퍼스」 는 어느의미로는 현대의「정신병」을 고치기 보다는 정확히 진단했던 정신문화사적 명의로서 오래 기억되어야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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