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 100만명 운명은 … 헌재 공개변론서 '비정규직 기간' 격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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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 위헌확인에 대한 공개변론이 13일 서울 재동 헌재에서 열렸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가운데)과 헌법재판관들이 변론을 듣고 있다. [뉴시스]

재계와 노동계는 최근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형태’를 두고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13일 옛 파견근로자 보호법(파견법)과 기간제 근로자 보호법 조항들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는 헌법소원 사건과 관련해 공개변론을 열었다. 파견법은 노동계에서 ‘사내하청 노동자 100만 명의 운명이 달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재계와 노동계 간에는 민감한 이슈다.

 기간제 근로자 문제 역시 정규직 전환을 놓고 양측이 팽팽히 맞선다. 이날 헌재 대심판정에 모인 양측 전문가들이 위헌성을 놓고 격론을 벌인 까닭이다. 중소기업에 입사한 최모씨는 2002년 현대차 노동자들과 함께 울산공장에서 근무했다. 최씨는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2005년 해고되자 소송을 냈다. 1, 2심을 각각 맡은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법은 원고패소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0년 “최씨가 불법적으로 파견근무를 하고 있었지만 불법 여부에 상관없이 현대차 공장에서 일한 지 2년이 지났으므로 현대차 노동자로 간주된다”고 판결했다. 이는 1998년 제정된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6조 3항에 ‘파견근로 기간이 2년 이상인 노동자는 원청업체가 고용한 것으로 본다’고 한 부분을 불법파견 근무자에 대해서도 확대적용한 것이다.

 판결 선고 후 현대차를 비롯한 제조업 분야 대기업에는 비상이 걸렸다.

 2년 이상 사내 하도급 형태로 일하던 근로자들이 현대차 같은 사용기업에 정규직 근로자 전환을 요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판결 후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 1941명이 정규직 인정과 차별 임금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현대차는 “해당 조항이 헌법상 보장된 계약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며 헌재에 위헌소원을 냈다.

공개변론에서 현대차 측 대리인으로 나선 법무법인 화우의 박상훈 변호사는 “해당 법조항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해당 법조항은 어떤 형태의 계약인지 세세하게 규정하지 않고 2년 이상만 지나면 사용자에게 무조건 고용하라고만 돼 있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또 “사용자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해 과잉금지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고용노동부 측은 “해당 법조항은 헌법이 규정한 근로자 기본권에 근거한 것이므로 합헌”이라고 맞섰다. 법무법인 한결의 이경우 변호사는 “명확하지 않은 법 규정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2년이라는 장기간의 조건을 충족해야 법조항이 적용되므로 과잉금지 위반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날 기간제 근로자를 최장 2년까지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대해서도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 법조항에 의해 수년간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된 우모씨 등 청구인 측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며 “입법 목적이 기간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나 실제로는 기간제 근로자를 해고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원의 김도형 변호사는 “이 조항은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 보호하려는 취지이고 그런 혜택을 입은 사람도 실제 있는 만큼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박민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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