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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금융 육성해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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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기환
한국해양대학교 해운경영학부 교수

남북이 분단된 한국은 섬나라나 마찬가지다. 다른 국가처럼 육지자원이 많은 것도 아니다. 생존을 위해 바다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여건인 것이다.

 바다는 산업화에 성공한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영국·스페인 등이 강력한 국력을 발휘했던 시기는 바다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때였다. 바다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배를 만드는 조선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다음으로 제작된 배를 이용하는 해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선박금융이 함께 발전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아직까지 세계 조선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조선업체들의 수주량은 세계 1위로 전체 시장의 35%를 차지했다. 석유시추선 같은 해양구조물의 수출도 약 4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13만 명 이상의 인력을 고용해 국내경제에 이바지하는 바가 크다. 해운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해운업은 선복량이 5600만 DWT로 세계 5위이며, 연간 운임수입이 385억 달러에 달한다. 직접 고용자수가 5만 명에 이르는 핵심산업이기도 한다.

 이런 조선업과 해운업이 계속 발전하기 위한 핵심 요소가 바로 원활한 자금조달이다. 해운사들은 보통 선박을 담보로 맡기고, 선박가치의 70~80%에 해당하는 자금을 장기로 빌려 선박을 구매한다. 한국에서 발주되는 선박은 고부가가치 선박이 많아 필요한 금융규모도 날로 커지는 추세다. 하지만 한국은 선박건조 등에 필요한 자금조달과 운용에 대한 전문지식과 인력이 부족해 해운사의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세계 선박금융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 내외인 데서도 잘 나타난다.

 해운·조선·선박금융은 삼각관계로 서로 얽혀 있다. 어느 한쪽이 부실해지면 다른 쪽도 흔들리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해운경기가 불황에 접어들었다. 해운경기를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2008년 5월에 1만1000 이상이었으나 최근에는 10분의 1도 안 되는 1000선을 밑돌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신규 수주가 격감해 조선업도 장기 불황에 빠졌다. 금융권도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7년 선박을 새로 건조하는 데 투자된 자금이 세계적으로 2662억 달러에 이르렀지만, 2012년에는 809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며 한국 경제에 큰 기여를 했던 조선·해운산업은 이익이 크게 감소하거나 적자를 보면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세계 1위 해운기업인 머스크를 보유한 덴마크에는 선박금융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덴마크선박금융기관(DSF)’이 있다. 머스크는 DSF의 금융지원을 바탕으로 발주량을 늘리며 세계시장 장악력을 키우고 있다. 이는 덴마크가 해양금융의 중요성을 일찍 파악하고 역량을 집중한 결과다. 조선·해운산업에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는 중국도 선박금융으로 무장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해외선사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주문을 끌어오고 있다. 최근 그리스 선사들은 이를 활용해 중국 조선소에 140척의 선박을 발주하기도 했다.

 예전에 한국의 조선은 선박품질 향상만 신경 쓰면 됐지만, 이젠 선박을 발주하는 해운사의 금융조달도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됐다. 국내 수출의 약 15%를 책임지고 있는 조선·해운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취약한 선박금융의 육성이 필요하다. 또 해운·조선경기의 흐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자금을 제공하는 선박금융은 금융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행히 정부에서는 부산을 해양·선박금융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역량을 모으고 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면 독일의 함부르크, 그리스의 피레에프스, 노르웨이의 오슬로처럼 항만도시에서 선박금융이 발달하고 있다. 부산의 아시아 선박금융 중심지 육성은 향후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선박금융공사를 설립해 선박금융에 대한 보증과 대출 그리고 경영위기에 직면한 선사의 구조조정 등을 수행하게 된다면 한국의 조선·해운업은 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기환 한국해양대학교 해운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