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스케일과 대담함…덩샤오핑 닮은 '국익 위한 배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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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 째 미중 정상회담은 1972년 베이징에서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이 열었습니다. 두 나라는 6.25때 교전국이고, 대만을 사이에 둔 적대국이며 베트남전쟁에서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런 두 나라 정상이 만난 건 공동의 적인 소련를 압박하고 포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까지 세상의 질서는 핵공격으로 서로 위협하던 미국과 소련의 질서였습니다. 이른바 냉전시대였죠.

닉슨은 소련을 근원적으로 허물고 싶어했습니다. 마오쩌둥은 내심, 사회주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가장 긴 국경선을 마주하며 이러저런 간섭을 해대는 소련이 미국 보다 더 미웠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적의 적과 손을 잡으려 했고, 중국은 먼 적을 이용해 가까운 적을 치려했습니다. 데탕트의 시대는 그렇게 시작됐고,1989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시대는 종언을 고했습니다.

[사진= AP]

어제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휴양지 정상회담은 40여년전 그 때와 닮은 맛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중 양국은 핵문제에 관한한 북한이 공동의 적이라는 인식을 확인했습니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점을 두 사람이 분명히 한 거죠. 북한이 계속해서 핵보유를 고집할 경우, 두 강대국 미국과 중국의 외면과 포위 속에 북한 정권은 시나브로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시진핑의 태도는 과거 후진타오나 장쩌민과 달랐습니다. 시진핑은, 마오쩌둥이 소련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북한에 대해 이념이나 친구관계라는 관념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이해관계와 국익으로만 북한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진핑은 덩샤오핑 스타일입니다. 덩샤오핑은 이념이나 친구관계로 보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북한의 뒤통수를 치고 한국과 수교를 결행했습니다.(1992년) 덩샤오핑은 '정치는 공산당, 경제는 시장경제'라는 중국식 개방개혁에 승부수를 던졌는데 한국의 국가자본주의적 시장경험과 기술+시장이 필요했던 겁니다.

덩샤오핑의 '국익을 위한 배반'이 얼마나 서늘했던지 김일성은 한중수교 직후 중국을 급방문해 덩샤오핑에게 "공화국의 깃발이 언제까지 나부낄지 두렵다"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덩샤오핑의 한중수교는 한소수교와 함께 김일성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어 결국 2년 뒤 그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김정은, 김일성이 덩샤오핑한테 당했던 것 보다 더 큰 충격

이번에 시진핑이 오바마와 합의한 '북핵 불인정'발표는 덩샤오핑의 한국수교가 김일성에게 주었던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을 김정은에게 안겨줄 겁니다. 김일성은 생전에 중국이 자신을 배반할 때 한국과 접근을 강화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72년 마오쩌둥이 닉슨과 만나자 바로 박정희 대통령과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 그렇고, 92년 덩샤오핑이 한중수교를 하자 김영삼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자고 요청(94년)한 것도 그렇습니다. 김일성은 YS와 정상회담 1주일 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그건 그렇고 시진핑이 생각하는 중국의 이해관계는 북한을 지정학적 방패로 삼아 미국의 공세를 막아보겠다는 식의 군사적이고 수세적인 개념이 아닌 듯합니다. 시진핑의 국익은 스스로의 경제력으로 미국의 앞마당에까지 돈을 풀어 세계를 우호화하는 공세적인 개념인 것같습니다.

지난 주 뉴스를 진행하면서 시진핑이 카리브연안 3국을 방문해 달러를 왕창 푸는 걸 보고 좀 놀랐습니다. 중국의 힘이 무력이 아니라 돈이구나,하는 놀라움이죠. 오바마 대통령이 이른바 '아시아로의 회귀'를 천명하면서 군사력 중심의 사고를 하는 것과도 대비되더군요.

오바마가 아시아로 압박해 들어올 때, 시진핑은 미국의 앞마당으로 달려가 파나마 운하보다 더 넓고 큰 니카라과 운하를 400억달러를 주고 건설해 주기로 했다는 기사가 그런 겁니다.

무력이 아니라 경제력, 상대방 앞마당으로 파고 드는 대담함, 시간과 공간을 넓게 쓰는 스케일… 이런 것들이 시진핑의 세계전략, 본인의 말로는 신형대국관계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전영기앵커 페이스북
이메일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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