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검찰'에 역풍이 없는 이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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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JTBC뉴스9 앵커

요즘 세상을 흔드는 힘을 꼽으라면 검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같은 사정기관인 국정원, 경찰청, 국세청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수사하면서 국정원과 서울경찰청을, 이재현 CJ회장을 수사하면서 서울국세청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검찰이 요새 수사하는 대상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사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신앙처럼 추진했던 4대강 사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미납, 이재용 삼성부회장이 아들을 자퇴시킨 영훈국제중학교 등이 있습니다.

전현직 대통령과 권력기관장, 재벌 총수의 이름이 앞에 붙는 사건들을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다룬 적이 언제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검찰은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힘이 행사되는 곳엔 견제와 저항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검찰의 질주엔 아직 이렇다할 역풍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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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권력이동기에 제대로 작동된 시스템 인사
대중의 정의감을 자극…절제력 잃으면 당할 수도

우선 검찰의 수사가 대중의 정의감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중은 본능적으로 강자의 추락에 쾌감을 느낍니다. 지금 검찰 수사는 강자를 치길 바라는 대중의 심리에 슬쩍 올라타 있습니다.
검찰이 조심해야 할 건 검찰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강자 집단이라는 겁니다. 도덕심과 절제력, 보편성과 겸손함이 의심을 받으면 대중의 정의감은 수사 주체인 검찰을 향해 표출될 수 있습니다.

현재 여야 정치권을 겨냥하는 수사가 없는 것도 역풍이 없는 이유일 겁니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다가도 검찰이 구속영장이나 체포영장을 청구하면 초당적으로 뭉쳐 본회의 표결에서 부결시키는 속성이 있지 않습니까.
집권당이나 제1야당이 검찰 수사의 문제점, 편파성을 정치이슈화하면 검찰은 속절없이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행여 검찰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정치권과 편안한 관계를 맺으려 해선 곤란합니다. 새 정부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자리, 내년 지방선거 공천을 놓고 정치권에서 숱한 음성적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범죄정보를 착실히 수집해 레이저 수술 같은 정밀타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검찰의 질주에 역풍이 없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채동욱(54)검찰총장의 존재입니다.
1800명 검사로 이뤄진 검찰 조직은 이명박 정부 후반기 최악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일부 검사들의 도덕적 타락과 형편없는 수사력, 과도한 정치성과 취약한 리더십에 따른 내분, 하극상 때문이었죠.

채동욱은 제대로 작동된 시스템 인사의 성과였습니다. 그는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검찰총장 후보자 세 명을 추천하고, 이들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으로 뽑힌 첫 번째 총장입니다.
이 때 종종 청와대가 미리 사람을 정해 놓고 추천위라는 요식절차를 거치곤 하는 수법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역사의 간지(?@뭧)라고 할까요. 총장후보추천위는 박근혜 당선인 시절에 가동됐습니다.미묘한 권력이동기였기에 임기 말의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 당선인의 입김을 추천위가 차단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9명의 추천위원회는 이 대통령쪽이나 박 당선인쪽이 선호하는 특정인들을 대체로 알고 있었지만 이들은 무기명비밀투표 결과 자연스럽게 배제됐습니다.
추천위원회는 토론을 통해 조직 내 신망 수사능력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선출 기준을 합의한 뒤 투표에 들어갔습니다.
시스템 인사로 탄생한 채동욱 총장은 상대적으로 임명권자나 정치권에 빚이 적습니다. 그가 평가받은 신망+수사력+중립성은 최악의 위기에 빠졌던 검찰을 오늘날 비교적 정상 상태로 돌려놓은 덕목이었습니다.

채 총장은 4년전, 지극정성으로 돌보던 뇌성마비 22세 딸을 저 세상에 먼저 보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그 아픔은, 모르긴 몰라도 갻무욕과 청정갽의 내면을 키워가지 않았을까요.
검찰의 매력은 추상같은 도덕심과 정의감에 있지만 실제 검찰조직은 승진욕과 공명심으로 굴러갑니다. 양쪽은 균형이 잡혀야 합니다. 도덕심이 승진욕에 팽개쳐지거나 정의감이 공명심에 먹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채동욱의 내면이 주목되는 건 리더의 향기가 조직문화를 바꿔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뉴스레터의 내용은 오늘(6월3일)자 중앙일보 28면에 제가 쓴 갻서소문 칼럼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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