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나들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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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벽 4시20분. 다른 식구들이 깰세라 조심조심 문을 여닫으며 집을 나섰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내게 차를 잡아주시면서도 어머니는 한심하시단다.
『글쎄 이젠 너도 얌전히 집에들어앉아 있어야할 나이가 됐는데 낚시질까지 하겠다고 새벽부터 야단이니….』『엄마, 정말로 올해까지만이예요. 아뭏든 방석은 내손으로 만들어 갈테니까 너무 염려마세요. 그럼 다녀 올께요.』
○…아직도 동이 트지않은 한강교의 불빛이 찬란하다.
김포가두를 지나야 겨우 훤해지는 축축하고도 상큼하게 갈앉은 새벽공기.
상기도 아침안개가 엉겨있는 수초를 헤치며 조그만「보트」에실려 수로를 거슬려 올라가면서 나는 엄마와의 약속이 지켜질까 생각해본다.
○…더구나 이제 9월이 아닌가. 바람은 수런거리고 창백한 가을 햇살은 그렇게 연약하고도 끊임없는 속삭임으로 나를 유혹할텐데….
문득 아침햇살이 뭍속에서 맑게 빛나듯 그렇게 투명하고 확실하게 느껴진다.
결혼이라는 끈이 나를 단단히 묶어두기 전에는 참으로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했구나 하고.
다 자란 여자가 느낄수있는 자유로운 방랑의 범위일까 하고 생각하니 물결처럼 잔잔하게 마음이 일렁거린다. <안명희·서울 성북구 인수동산69·10통11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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