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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의 산 증인|"불을 만드는 아저씨 철도청 이용호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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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국 체전 때마다 「메인·스타디움」에 밝혀지는 성화를 체전 이후 한번도 빠짐없이 채화해 온 「성화의 산 증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철도청 직원이 이용호씨(43·서울 서대문구 신촌동283)가 바로 주인공.
이씨는 전국체전에 성화를 밝히기 시작한 1955년 제36회 대회 때부터 줄곧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성화를 채와, 이를 제1주자로부터 최종 주자가 메인·스타디움에 점화하게 되기까지 14년 동안을 한번도 빠짐없이 지켜왔다.
14년 동안에 이씨는 성화가 「메인·스타디움」에 밝혀지기까지 운반에 얽힌 고달픔과 사연 등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우리나라 성화의 유일한 목격자이기도하다.
이씨가 전국체전 성화를 채화하게 된 것은 근무처에서 온 우연한 기회.
1955년 제36회 대회 때 당시 체전시설담당책임을 맡은 고 김근화씨(당시 공작창장)가 국체 때도 세계「올림픽」과 같이 성화를 밝히자고 주장, 이의 실현을 보게 되어 김씨가 당시 설비과에 근무 중이던 이용호씨를 데리고 마니산 참성단에 올라간 것이 성화 채화에 첫 인연을 맺게 된 것.
따라서 이 대회부터 체전 전일에 참성단에서 채화된 성화를 최종 주자 손기정씨에 의해 서울운동장 성화대에 점화됨으로써 체전 때마다 대회기간 동안 성화가 타오르게 된 것이다.
이씨는 14년 동안을 성화 채화만을 해왔기 때문에 강화도 어린이들에게서 「불을 만드는 괴상한 아저씨」라고까지 별명을 듣는 채화기술자가 돼 버렸다.
이씨는 해발 4백80미터되는 마니산에서 일기가 좋으면 확대경을 이용, 태양열로 성화를 채화하며 흐린 날에는 부싯돌을 쓰고 있는데 불과 5초안에 채화가 끝난다. 성화 채화의 습관인지 이씨는 평소에도 확대경이나 부싯돌을 넣고 다니는 습관이 생기기까지 했다는 것. 이씨는 성화를 따라 다니는 동안 신체적인 고달픔보다 성화운반에 온 신경이 피로를 늘 느낀다는 것.
지난 38회 부산대회 때는 주자들이 10여일을 강행군, 모두 피로가 겹쳐 대구∼마산간에서 주자가 넘어져 성화에 주자 머리가 화상을 입은 일이 있고 제43회 때는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성화주자를 차로 운반하는 소동까지 빚었다는 것. 6남매의 가장이고 한 이씨는 국민들이나 체육인이 전혀 무관심하고 있을지라도 성화 채화를 몸이 쇠약할 때까지 계속 맡겠다고 그의 굳은 신념을 표하고 있다. <강화=노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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