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헌법·정치·의회 이대로 둘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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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
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

사람은 모두 다르며, 동시에 모두 똑같다. 다르면서도 평등한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는 늘 수많은 문제들로 가득하다. 인간들의 철학·학문·이론·법률·제도·정책들은 모두 인간문제를 해결하려는 여러 노력들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사회 역시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하다. 특별히 공동체는 빠르게 발전했으나 개인들의 삶은 너무도 안쓰럽고 힘에 겹다. 특히 일반 서민·국민·민중들의 삶이 그러하다. 더욱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는, 국가의 경제·기술·문명의 발전과 개인들의 고난이 이토록 오랫동안 병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공동체에서는 그러한 특이한 집단적 생존방식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찬찬히 곱씹을수록 참으로 난감하고 난망한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민중의 자기지배를 뜻한다. 우리가 직접 대표를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하는 이유는 ‘다르고도 똑같은’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인 것이다. 민주화 이후 우리는 여러 차례 대표를 선출하고 정부를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삶의 문제가 나아지지 않는 걸까? 우리의 대표들과 정부들이 모두 무능하고 나빴기 때문일까? 인간들의 개별적 지혜는 너무도 부족하여 오랜 인류 실험의 산물인 세계 보편적 제도 흐름에는 꼭 이유가 있다. 민주주의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중앙시평’을 통해 국회의원 숫자 및 비례대표 대폭 확대, 위로부터의 공천제 전면 폐지, 의원 세비 절반 삭감과 특권 폐지, 의회 상시 개회,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여성의원(공천) 비율 대폭 확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선거연령 18세 하향조정, 헌법 개혁 등을 ‘국제비교를 통해’ 주장한 소이는 여기에 있었다. 한국적 삶의 많은 문제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독자들이 강한 찬반의사를 표명해준 가운데 이들 중 어떤 의제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주요 개혁현안이 되어 있다.

 오늘 살펴볼 문제도 역시 민주주의다. 한마디로 한국의 대표구성·의회선거는 1인1표의 평등선거·민주선거가 전혀 아니다. 즉 헌법과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위배된다. 한국에서 최대선거구와 최소선거구의 ‘선거구별 인구편차’는 무려 2.96배 차이가 난다(2.96대1, 10만3619명 대 30만6624명). 어떤 국민의 표는 다른 국민의 세 배 또는 3분의 1 무게를 갖는다. ‘선거권의 효과’가 전혀 평등하지 않은 불평등선거인 것이다. 주요 민주국가의 선거구별 인구편차 허용한도는 우리보다 크게 낮아 영국 1.2대1(75%)에서 2.3대1(25%), 미국 1.22대1, 독일 2대1, 일본 2.3대1이다. 우리의 헌법재판소 역시 위헌기준으로는 3대1을 제시하나 2대1이 바람직한 편차라는 견해다(헌법재판소 2001.10.25 선고 2000 헌마92결정). 민주주의와 평등선거를 위해 속히 혁파되어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왜곡된 대표체계·의회구성이 유지되는 또 다른 얼토당토않은 근간을 검토해 보자. 잘못된 대표구성방식의 폐해가 너무도 크다. 현재의 정당체제가 등장한 1990년 이후 현재까지 의회선거에서 영남지역에서 (민주자유당 이래) 새누리당의 평균득표는 50%였으나 의석수는 82%에 달했다. 32%의 의석은 전적으로 제도왜곡의 산물로서 유권자 지지가 전혀 아닌 것이다. 반면 호남지역에서 민주당의 평균득표는 62%, 의석수는 87%였다. 25%의 의석은 제도왜곡의 산물로서 유권자 지지 수치가 전혀 아니다. 둘 모두 바람직한 투표원칙과 선거제도였다면 불가능했을 지역적 의석독점의 기형적 산물인 것이다.

 요체는 간단하다. 민주주의·1인1표·평등선거의 원칙에 맞도록 선거구역과 선거제도를 전면 혁신하고, 실제 유효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일치 또는 근접시키는 것이다. 그런 방식을 실제 투표결과에 대입해 보면 90년 이후 한국의 대표체계·의회구성·정당체제는 전연 달랐다. 여기에 더해 의회를 OECD 평균 수준이나 복지국가 규모로 대폭 확대한다면 한국의 대표체계와 민주주의는 우리들 삶의 문제 해결에 훨씬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결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이 5년 동안 무소불위로 권력을 행사하고 정책을 집행하고 나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현재의 ‘대통령 무책임제 헌정질서’ 자체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다른 제도개혁의 효과는 극히 미미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숱한 정치개혁·정당개혁·선거개혁·의회개혁·검찰개혁·사법개혁의 효과가 너무도 제한적이었던 근본 연유는 여기에 있었다. 다음엔 그 문제를 살펴보자. 우리는 제도를 몰라서가 아니라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베를린자유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