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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근친 교배가 부른 원전 비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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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때이른 무더위에 절전하느라 국민들의 고통이 도를 넘고 있다. 원전 부품 비리의 후폭풍을 엉뚱하게 우리 사회가 뒤집어쓰고 있다. 검찰과 언론이 원전 비리를 추적하면서 특정 대학 출신들이 공생 관계를 형성하는 원전 마피아의 뿌리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원전업계의 낙하산 인사도 비리의 근원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경우 고위 퇴직자의 30%가 원전 협력업체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통속이 된 원전 마피아들의 근친 교배로 비판과 견제 기능이 실종되면서 부품 시험서 위조나 안전 검사 조작 같은 상상하지도 못할 끔찍한 범죄가 독버섯처럼 자라난 것이다.

 원전 가동을 중단시킨 부품 시험성적서 조작에는 승인기관인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과 한수원 퇴직자들이 대거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관련 업체들은 “전문성 있는 인력을 채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이 정말 전문성을 발휘했다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비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협력업체들이 한수원과 한전기술의 퇴직자들을 영입해 일감 수주나 로비에 악용한 게 아닌지 의문이다. 또한 납품업체가 돈을 대고 민간 검증기관에 품질 시험을 맡기는 원전업계 관행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납품업체가 몰아주는 일거리에 목을 매는 검증기관이 어떻게 엄격한 시험을 하기를 기대하겠는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원자력 분야는 서울대 원자력공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들이 지배해 왔다. 이들은 배타적인 전문성을 앞세워 정부·한수원·한전기술은 물론 원전 제조업체와 시험기관 등에 포진해 폐쇄적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이 원전 건설에서 검사·감독에 이르기까지 시장을 독식하는 바람에 음성적인 비리 사슬이 만들어진 것이다. 소수의 이익 집단이 서로 유착하게 되면 부패와 비리의 온상으로 변질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들의 정보와 자료 독점을 막으려면 원전 마피아부터 해체시켜야 한다. 필요하면 해외 전문가를 포함한 제3자로 구성된 감시기구를 만들어야 비판과 견제 기능을 되살릴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무더위보다 끝없이 반복되는 원전 비리에 더욱 분노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 비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개인의 사욕과 바꾼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며 “비리의 사슬 구조를 원천적으로 끊겠다”고 다짐했다. 맞는 말이다. 정치권 역시 원전 비리를 저지른 법인과 개인의 재산을 미리 압류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라 한다. 국민적 공분을 가라앉히려면 당연히 밟아야 할 수순이다. 원전 3기의 가동이 중단되는 바람에 값비싼 LNG 발전으로 1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예상되고 있다. 만의 하나 블랙아웃이라도 일어나면 중요 생산라인이 멈춰서면서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원전 비리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국가의 기반을 흔드는 중대 범죄로 간주해야 한다. 엄중한 조사와 처벌을 통해 단 한 번의 비리로 패가망신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원전 마피아의 준동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