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0년의 대화|문교부 장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아이구 어서오십시오. 16대 후배님…. 』 권오병(50) 문교부장관은 장관실에서 안호상 (67) 초대를 반갑게 「조크」로 맞았다.
『무슨 말을 그리하노. 내가 16대조상이지. 아 참요새는 모두 거꾸로라던가?』
안호상씨는 짐짓 호통치듯하면서 얼굴에는 미소가 물결쳤다.
자리에 앉은 안씨는 16대와 18대를 지낸 권장관을 칭찬부터했다.『요새 애많이 쓰더군. 중학교입시폐지,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제정등 굵직한일들을 치르느라 고생이많겠지. 권장관은 몸이 뚱뚱해서 잘 이겨나가지만 나같으면 못견딜거야. 문교부일은 내가 있을때보다 지금이 훨씬 어려울것같아. 학교수도많고 지식인은 물론 노동자, 농민, 심지어는 식모들까지도 교육에는 제각기 일가견을 갖고 한마디씩하니 말이야….』
초대장관 안씨가 후배의 고충을 알아 주자 「입시혁명의 기수」인 권장관답지않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안선배님, 좋은 말씁이십니다. 많이 달라졌어요. 당시 1백45만명이던 학생수가 요즘은 7백만이 넘고 학교수도 늘었습니다. 교육예산도 연간 4백억원이 넘어 전체예산의 18%나되고 산하기관만도 2백이 넘어요. 이와같이 교육은 단적인면은 엄청나게 팽창 했지만 질적으로는 엉망이지요. 일유병이다, 과외공부다해서 학교교육은 말이아니예요. 한국교육을 질적으로 국제수준까지 끌어올리자면 장기적인 종합계획을 세워야 할텐데 안선배가 도와주셔야겠읍니다.』
미군정시대에는 한달남짓, 문교부장으로, 정부수립후에는 2년가까이(48년8월∼50년5윌) 문교부장관을 지내며 한국교육의 산파역을 맡았던 안씨는 지그시 눈을감고 20년전을 회상했다.
『그때는 교육계획 따로 없었어. 기껏해서 학교를 어떻게 늘리느냐, 일제사상을 어떻게 씻어 내느냐가 문제였지. 그당시 명색 대학교 (종합대)라고는 국립으로 서울대와 부산대 뿐이었고 사립은 하나도 없을정도니까. 굳이 교육계획을 들자면 사범학교를 3전사관학교처럼 만드는일, 1만명을 수용할수있는 국립체육관을 짓는일, 국립촬영소를 짓는일 정도고 지금처럼 복잡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안씨는 2년간의 장관재직중 학도호국단을 만들때 『가장 호되게 얻어맞았다』 면서 허허 웃었다.
당시는 학생들에게서 일제의 때묻은 사상을 씻어내는것 못지않게 공산주의사상을 뿌리뽑는 일이었다고.
지금은 대한체육회 고문등 명예직만을갖고 조용히 야인생활을하는 안호상초대는 아직도 교육문제에는 관심이대단하다.『지금 정부가 만들고있다는 교육헌장, 참좋습니다. 절대찬성입니다. 그러나 그내용과 방법이 문제예요. 그내용은 제3공화국의 지성을 나타내야 가치가있는거지 남의것을 여기저기서 조금씩 떼어다 붙이는 식이면 안돼요. 제3공화국의 특성이란 다 알다시피 ①국민주체성의 확립 ②조국근대화의 완수 ③국토통일의 실현등…. 이것들을위한 「홍익인간」이 중요하지않겠어요? 그방법은 이기적인 개인주의적 민주주의도 아니고 파 당적인 계급주의적 민주주의도 아니며 공화적인 민족주의적 민주주의를 써야합니다.』
그의열변이 계속되자 권장관이 적당히 말을 끊었다.
『우리나라가 순전한 우리재정만으로 교육투자를 장기계획하기는 제3공화국부터입니다. 지금구미 각국에는 우수한 우리 유학생이 많습니다. 유학생을 해외에보내는것도 좋지만 국내 대학의 질을 높여 세계수준에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국내 유수한 대학에 미국대학의 분교를두어 미국에서 4년공부할것을 국내에서2년, 미국에서 2년씩 배우게 하겠어요. 그래야만 우리나라의 교와 학생들이 외국의 대학과 비교해가며 국제수준에 따라가지 않겠어요.』
안씨는 대견한둣 『처음듯는 일이나 좋은 「아이디어」』 라면서 적극찬성하고 나섰다. 안초대장관은 곁들여 기업화 해가는 대학을 연구하는대학으로 고치기위한 「대수술」 을 빨리해야할것이라고 힘주어말했다. 그래야만 대학도 살고 국민도 산다면서….
『중학교입학시험제도를없앤것은어떻습니까?』
『대단히 좋은일이요. 그뒤에 따른 문제만 권장관이잘다룬다면….』
『안선배는 지금까지18대손까지 보며 살아계신데 앞으로도 더오래사셔서 충고 많이해주세요. 유력한고문으로모시겠습니다. 하, 하, 하. 』장수를비는 권18대에게 안초대는 『18대아니라 28대까지라도 살아서지켜 보겠다…』 면서말을맺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