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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전두엽 기능이 망가지면 욱하고 폭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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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세브란스병원

말싸움을 하다 친구를 죽이고,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을 살해하고, 담배 피우는 것을 나무라는 할머니를 공격하고…각박하고 거칠어진 우리 사회의 요즘 모습이다. 순간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전문의들은 이를 충동조절장애라고 부른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지인 교수에게 충동조절장애에 대해 들어봤다.

 -충동조절장애란 무엇인가.
 “그야말로 충동 조절이 잘 안 되는 정신과적 질환을 말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뇌가 관여한다. 감정을 일으키고 받아들이는 부위가 뇌의 중심 부위에 있는 ‘변연계’라면, 이 감정을 조절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부위는 뇌 앞쪽의 ‘전두엽’이다.
 충동조절장애는 이 두 부위 중 한쪽, 또는 두 부위 간 신호전달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변연계에 지속적으로 큰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 또는 한꺼번에 심한 충격(또는 스트레스)을 받는 경우 전두엽에 부하가 걸려 감정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한다. 자신도 모르게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전두엽 기능이 망가진 경우 변연계에서 큰 스트레스가 일어나도 전두엽에서 이를 잘 조절해주면 되는데, 전두엽 기능이 떨어진 사람은 조절이 안 돼 작은 스트레스에도 충동적인 행동을 쉽게 한다.”

 -전두엽 기능은 왜 떨어지나.
 “뇌를 다쳐 뇌 앞쪽에서 출혈이 생기면 전두엽이 망가지기 쉽다. 그러면 분노 조절이 잘 안 된다. 생각한 대로 말이 나오고, 화가 나는 대로 행동에 옮기기 쉽다. 뇌출혈·뇌경색이 대표적이고 파킨슨병 환자도 해당될 수 있다.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범도 그런 경우였다. 뇌출혈 때문에 전두엽 기능이 망가졌는데, 분노 조절이 잘 안 됐던 거다.”

 -게임을 많이 해도 충동 조절이 잘 안 된다고 하는데.
 “게임에 몰입하면 뇌가 반복적으로 단순 자극을 받는다. 또 게임 특성상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결과가 나와 참을성 없게 만들기도 한다. 여러 연구 결과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들 뇌의 전두엽 기능이 일반 아이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라온 가정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나.
 “어렸을 때 학대를 당한 아이, 아예 방임됐던 아이, 또는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아 겉도는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불안감이 커진다. 뇌 변연계에 ‘감정 과잉’이 생기고 전두엽과 변연계 간 신호전달 시스템도 성숙하지 못한다. 즉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떨어진 상태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조그만 자극에도 화를 잘 내고 ‘욱’하는 성질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거친 가정환경을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로 봐야 하는 이유다.”

 -‘오냐오냐’ 하고 키우는 아이도 문제인가.
 “예전과 달리 요즘은 한 가정에 아이 하나 아니면 둘이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키우다 보니 엄마가 다 알아서 챙겨주는 가정이 늘고 있다. 요즘은 병원 인턴·레지던트들도 무슨 문제가 생기면 엄마들이 와서 해결하기도 한다. 엄마가 다 해결해주다 보니 좌절이나 실패를 경험할 수 없고, 그걸 스스로 극복해내는 과정도 겪어보지 못한다. 즉 변연계와 전두엽 기능이 성숙될 기회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좌절했을 때 참고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방화 등 충동적 선택을 하게 된다.”

 -충동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온화하고 얌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충동적 행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평소 조금이라도 욱하는 성질이 있던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 또 조울증이 있는 사람, 섭식장애(폭식증 또는 거식증)가 있는 사람,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인 아이나 성인, 알코올 중독자 등은 충동을 조절하는 변연계와 전두엽 기능이 떨어져 있으므로 고위험군이다.”

 -어떻게 치료하나.
 “약물치료가 가장 확실하다. 변연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 경우 이를 가라앉히는 약물을 쓴다. 또 긍정적인 기분이 들게 하는 세로토닌 분비가 부족하면 이를 끌어올리는 약물을 쓴다. 혈액검사·뇌파검사·뇌영상진단(MRI)·심리평가 등을 통해 뇌의 조절 능력을 균형 있게 하는 약물을 쓰기도 한다. 물론 상담을 통해 분노가 왜 잘 조절되지 않는지에 대한 근본 원인을 밝히고 심리 치료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운동도 치료에 도움이 되나.
 “뇌 변연계에 분노가 꽉 차 오르게 하지 않으려면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활동이 중요하다. 규칙적인 운동은 화를 분산시켜 충동 조절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등산을 추천한다. 숲의 피톤치드가 스트레스 수치를 낮춘다는 연구가 있고, 잡념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또 취미 생활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독서치료·그림치료·음악치료 등이 충동조절장애 치료에도 적용되고 있다.”

 -그 밖에 충동조절장애 완화에 도움 되는 게 있다면.
 “규칙적인 식사다. 몸은 생체리듬이 일정해야 모든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뇌의 호르몬 분비와 변연계·전두엽 간의 신호전달도 생활이 규칙적일 때 가장 활성화된다. 세 끼를 시간 맞춰 골고루 먹는 습관이 뇌 건강에도 도움 된다. 또 생선·견과류 등에 풍부한 오메가3가 불안을 가라앉혀 뇌 충동 작용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배지영 기자 jy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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