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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자사고, 학업성취도·만족도 높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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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병민
중동고 교장
서울자율형사립고
교장협의회 회장

일반고의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일반고는 전체 고교생의 72%가 다니는 공교육의 중추다. 그렇기에 무너지는 교실, 생활 지도의 어려움, 학력 저하로 상징되는 지금의 일반고의 상황은 심각하게 다가온다. 어떤 이들은 위기의 원인을 이명박정부 때 추진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에서 찾곤 한다. 이는 학교 선택권을 늘리고 교육과정의 다양화·특성화를 이끌기 위한 정책으로 당시 정부는 자율형 사립고 100곳, 기숙형 공립고 150곳, 전문계 특성화 마이스터고 50곳 설립을 공언했다.

 이에 따라 서울에 25개 자사고를 비롯한 전국에 많은 자사고가 들어섰다. 자사고를 비판하는 이들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특목고· 자사고에서 휩쓸어 갔기에 일반고들이 지금처럼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자사고를 없애고 평준화 정책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일반고의 위기가 자사고 때문에 비롯됐는가?

 공교육의 위기가 가장 심각했던 시기는 ‘하나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다’고 외치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입시 교육 탈피와 교육의 평등을 소리 높여 외쳤던 시대임에도 ‘교실 붕괴’는 당시의 전국적인 현상이었다.

 여러 연구와 자료에서 밝혀졌듯 현재 자사고의 학업 성취도와 학교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 이는 우리 교육의 놀라운 성과다. 일반고 72%가 아닌 28%의 학교는 적어도 ‘환영받는 학교’가 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정착 단계에 있는 28%의 좋은 학교를 흔들어 교육수요자가 불만이 많은 72%의 학교로 되돌리는 게 과연 교육의 발전인가? 오히려 앞서 가는 28%의 학교를 모델로 삼아 72%를 끌어올리는 것이 더 나은 방안이 아닌가?

 혹자는 자사고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학교 현장을 황폐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입시는 교육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입시 교육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입시 교육을 하느냐이다. 박근혜정부는 ‘꿈과 끼를 키우는 교육’을 강조한다. 지당한 말이다. 좋은 학교는 학생이 꿈과 끼를 틔우면서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도록 한다. 지금의 자사고들이 그렇지 않은가? 자사고들은 동아리 활동·체험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경쟁력과 인성을 함께 키우고 있다.

 수시가 대세인 지금의 입시에서 강제학습과 주입식 교육으로는 학교가 살아남기 어렵다. 자사고는 입시 교육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하는 시대와 인재상에 맞는 교육을 하고 있기에 입시에서도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 자사고들은 치열하게 경쟁한다. 경쟁은 발전을 이끄는 힘이다. 혁신학교 등 일반고에서 일고 있는 변화 시도도 자사고들과의 ‘경쟁’에서 비롯되지 않았는가?

 게다가 모든 자사고는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사교육비까지 염두에 둔다면 자사고에 진학하는 쪽이 경제적인 부담이 훨씬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래도 자사고 때문에 빈부격차가 심화된다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자사고를 ‘귀족학교’라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내막은 다르다. 인적 구성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의 건강한 중산층이 주로 다니는 학교일 뿐이다. 게다가 정원의 20%는 사회배려자에게 할당돼 있다.

 사학의 존재 이유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인재를, 나름의 교육과정으로 교육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의 사학들은 자율성을 잃은 지 이미 오래다. 이 점에서 보면 자율형 사립고는 특수한 학교가 아니라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에 가깝다.

 정부가 일반고를 살리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교육의 발전은 선의의 경쟁과 자율의 확대를 통해 이루어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김 병 민 중동고 교장 서울자율형사립고 교장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