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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박보균 칼럼

박근혜 외교의 대란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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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보균
대기자

동북아는 조용한 대란(大亂)이다. 그 속에 북·중 관계의 변화와 재구성도 있다. 연출자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다. 시진핑 정권은 ‘신형 대국외교’를 내걸었다. 국제질서 관리의 중국식 신외교를 펼치려는 의지다. 북한 최용해 특사 방문도 신외교의 적용대상이었다. 북한은 공개적인 수모를 당했다.

 그 변화는 그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勛) 시대와 대비된다. 1982년 10월 시중쉰은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이었다. 그는 김일성 주석도 만났다. ‘형제적 조선인민, 피로써 맺어진 친선과 전투적 단결’을 외쳤다.

 시중쉰은 판문점 북쪽의 판문각 앞에 섰다(노동신문 82년 10월 14일자 사진). 그는 “남조선과 미국이 전쟁의 불을 지른다면 우리는 압록강을 건너서뿐 아니라 다른 방면으로도 조선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조선의 친선이 대를 이어 전해질 것”이라고 다짐도 했다.

 31년 후 아들 시대에서 시중쉰의 다짐은 극적으로 헝클어졌다. 아버지와 아들의 언행 차이는 변화의 강렬한 상징이다. 지난주 시진핑은 군 총정치국장 최용해를 압박했다. 북한 핵무기 실험에 대한 그의 불쾌감은 면박을 주는 듯 풍겼다. 그 감정은 김정은 친서를 받을 때 고조됐다. 친서를 한 손으로 받아 비서에게 넘겼다. 북한 ‘최고 존엄’의 편지는 무시됐다.

 2000년 10월 조명록의 미국 방문이 생각난다. 조명록의 계급(차수)·직책은 최용해와 같았다. 조명록의 군복 차림은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독특한 격조를 드러냈다. 그 장면은 “북한에 인물이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베이징에서 최용해의 군복은 촌스러웠다. 챙이 짧고 앞면이 과장된 모자는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 모습은 “북한은 인적 자원마저 고갈됐다”는 느낌을 주었다.

 남북한의 장면도 달라졌다. 지난달 북한은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기습과 예측불가능, 반전(反轉)은 북한 외교의 장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철수로 맞받았다. 그것은 예측을 뛰어넘는 역습이다. 북한의 전형적인 수법과 언어는 효력을 잃었다. 동북아 대란의 긍정적 요소다. 남남갈등 시도는 먹히지 않았다.

 북한 외교는 한 시대 불패의 협상력을 과시했다. 그들의 단막극에 미국은 수없이 당했다. 북한 방식은 위협·도발→대화·협상→양보·원조의 순환이다. 긴장 조성의 크기만큼 그들은 양보를 얻어냈다. 벼랑 끝 전술은 협상력을 높였다. 그 평판과 기세는 이제 움츠러들었다. 박 대통령은 악순환을 퇴출시키려 한다.

 북한의 외교 고립은 전례가 드물다. 그들 국가운영의 비정상과 돌발도 끊임없다. 라오스에서 탈북자 강제 북송은 비정상의 극단이다. 그 행태는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다. 그럴수록 그들은 핵무기에 의존한다. 핵의 위력은 그런 역설에서 돋보인다. 그 점은 김정은 체제에서 핵무기 폐기의 비관적 전망을 굳힌다. 핵무기 퇴장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은 북한 비핵화 압박의 딜레마다. 동북아 대란 정세의 비관적 요소다.

 박 대통령은 중국 카드에 주목해왔다. 6월 말 그는 베이징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난다. 회담은 북한의 핵 포기, 북한 외교 행태의 정상화, 탈북자 강제 북송의 차단을 위한 협력 무대다. 중국과의 공조 밀도는 미지수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베이징 외교가에서 “북·중은 혈맹 아닌 일반국가 관계”라는 언급이 늘었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실망과 거부의 중국식 표현이다. 중국은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독점하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전략 요소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외교는 ‘아시아 회귀’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 가치는 매력적이다. 따라서 북·중 관계의 재구성은 제한적이다. 비핵화 압력은 중국식 절제 속에 진행될 것이다.

 국제 관계는 상호 교환이다. 한국이 의존한 만큼 중국의 한반도 영향력은 커진다. 6자회담은 중국 외교의 위세를 결정적으로 키웠다. 중국은 한·미 동맹을 경계한다. 중국은 동맹의 미래 청사진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중국에 대한 요청과 기대의 수준은 정밀하게 계산돼야 한다. 중국으로의 외교 집중은 일본의 반발을 산다. 아베 정부의 시대착오적 역사 접근은 개탄과 분노를 유발한다. 하지만 북한을 겨냥한 압박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긴요하다.

 한국과 중국 관계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다. 한·미는 동맹관계다. 동맹과 동반은 공존할 수 있다. 미·중 긴장 속에도 공존의 묘미는 살릴 수 있다. 한반도 주변 정세는 요동친다. 대란의 국제 질서 재편기다. 대란의 속성은 기회다. 대전환의 결정적인 공간을 마련해준다. 박근혜 외교는 대치(大治)의 역량으로 기회를 낚아채야 한다. 그 공간을 선점하는 능소능대의 전략과 지혜, 숙련이 절실하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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