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배명복 칼럼

'서니랜즈 서밋'에 거는 기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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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버락 오바마 미 합중국 대통령 각하, 시진핑(習近平)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각하. 열흘 후인 다음 달 7일 두 분은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카운티의 조그만 휴양도시 랜초 미라지에서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미국의 뛰어난 신문·출판인으로, 주영 미국대사를 지낸 외교관이자 위대한 자선가였던 월터 아넨버그가 생전에 그곳에 조성한 서니랜즈의 ‘아넨버그 별장(Annenberg Retreat)’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미국과 중국이 당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첫 미·중 정상회담 장소로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대신 ‘서부의 캠프 데이비드’로 불리는 서니랜즈를 제안하고, 시진핑 주석이 이를 수락한 것은 무슨 연유에서일까요. 의례에 얽매인 형식적인 대화보다 넥타이를 풀고, 편안한 마음으로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눠보자는 취지일 것입니다. 흉금을 털어놓는 허심탄회한 대화가 필요할 정도로 미·중 관계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가 됐습니다. G2라는 표현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이미 두 나라는 ‘불가결한 국가(indispensable nations)’입니다. 지구촌의 어떤 이슈도 워싱턴과 베이징을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두 분이 조율해야 할 문제는 산처럼 쌓여 있지만 미국과 중국, 두 나라의 관계가 당연히 최우선 의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미·중 관계는 화해의 물꼬를 텄습니다. 그로부터 7년 후 두 나라는 역사적인 수교를 하면서 미·중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 중국은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됐고,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액으로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메워주고 있습니다. 두 나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은 미·중 협력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만들고 있습니다. 협력하면서 경쟁하고 견제하는 것이 양국 관계의 현주소입니다.

 중국의 5세대 지도자와 미국의 재선 대통령이 만나는 서니랜즈 회담은 미·중 관계의 제2막을 여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41년 전 닉슨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채택한 ‘상하이 공동성명’의 기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공동성명 9조에서 두 나라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 어떤 나라나 국가군의 패권 확보 노력에도 반대한다고 천명했습니다.

 중국의 부상에 맞서 미국이 추진 중인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전략과 재균형 정책을 아·태 국가들은 역내 패권을 둘러싼 고래 싸움으로 인식하고,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중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모든 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풀어나간다는 대원칙을 천명함으로써 아·태 국가들의 불안을 잠재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대국(大國)의 책무입니다. 미·중이 상생하고,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소모적인 경쟁과 자극적인 견제를 지양하고 미래지향적이고 건설적인 협력을 추구하는 21세기 미·중 관계의 기본원칙을 ‘서니랜즈 공동성명’에 담아 주십시오. 대국 관계를 늘 패권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믿는 현실주의 이론가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십시오.

 미·중 협력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필수 조건이기도 합니다. 부조리하고 시대착오적인 분단 구도가 한반도 문제의 근본 원인임을 인정하고, 분단 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모든 한국인들의 열망을 환영하고 지지한다는 원칙을 천명해 주십시오. 통일의 선결 조건인 북한의 비핵화를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원칙도 밝혀 주십시오.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중국의 역할 분담이 중요합니다. 핵·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동결하도록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중국의 역할입니다. 그런 레버리지를 가진 유일한 나라가 중국입니다. 회담 테이블로 돌아온 북한을 상대로 ‘빅딜’을 시도해 핵 포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미국의 역할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긴장 완화와 대화 분위기를 유도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담대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미·중에 제공하는 것은 한국의 역할입니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의 문제이면서 국제 문제입니다. 미·중의 갈등 요인이기도 합니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미·중 관계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두 분이 협력해 한반도 문제 해결의 본격적인 시동을 걸 수 있다면 미·중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역사에 남을 ‘서니랜즈 서밋’을 기대합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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