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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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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어린이날 무렵이었을 게다. 점심 약속이 있어 어느 식당에 들어서는데,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부가 먼저 문을 밀고 들어가서는 그대로 문을 놓아버린 탓에 되돌아오는 유리문이 하마터면 내 이마에 부딪칠 뻔했다. 식당을 나올 때는 더 황당했다. 바로 뒤에 젊은 엄마와 어린아이가 따라 나오기에 출입문을 잡고 기다려주었더니, 모녀는 손가락도 까딱 않은 채 몸만 살짝 비틀어 문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얼결에 문지기가 된 나는 주제넘은 걱정으로 잠시 우울해졌다. 저 아이가 엄마의 행동에서 무얼 보고 배울까.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숱한 인연들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상대적 존재다. 절대자아는 신밖에 없다. 아니, 신도 피조물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다. 하물며 사람일까.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單獨者)도 ‘신 앞에서(Coram Deo)’라는 궁극의 관계성을 그 전제로 지닌다. 사람은 단독자가 아니라 신과 자연과 사회와 이웃…, 그 모든 타자(他者)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명의 호흡을 이어간다. 제 가족만 알고 제 피붙이만 아끼는 폐쇄적 사랑은 확장된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왕국을 다스리는 것보다 가정을 다스리는 일이 더 어렵다.” 몽테뉴의 탄식이다. 곳곳에서 가정들이 해체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과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자살률은 이들 나라의 평균치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자살하는 청소년의 63%가 가정환경이 불우한 아이들이라는 통계는 가정의 달 5월에 암울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가정의 붕괴가 반드시 높은 이혼율이나 자살률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에게서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하는 부모, 어버이와 소통하기를 꺼리는 아들·딸, 이들 사이에 가로놓인 불신의 벽이 가정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려 간다.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 하우스리스(houseless)는 줄었지만, 가정이 깨진 자리에서 방황하는 홈리스(homeless)는 더 많아졌다. 집들은 늘어나는데 가정이 사라져 간다. 가정은 사회공동체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가정이 불안한 사회에서 내실 있는 발전을 기약할 수는 없다.

 국가원수를 대변한다는 공직자가 막내딸 같은 교포 여대생에게 저지른 짓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사실관계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난스럽게 선정적인 언론 보도 앞에서 그의 자녀들이 애꿎게 겪고 있을 정신적 고통은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부모의 무심한 말 한마디, 무분별한 발걸음 하나가 자녀의 마음에서 존경과 신뢰를 앗아간다.

 내 가족의 안일을 위해 공금(公金)에 손을 대는 아버지, 내 자식을 명문 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부정한 뒷거래를 하는 어머니…, 그런 부모를 자녀들은 경원(敬遠)한다. 아니, 경멸한다. 신뢰를 잃은 어른의 권위란 아무 쓸모없는 구닥다리 장식물에 불과하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윤리적으로도 풀이 죽을 대로 죽은 가장(家長)들은 책임의 무게에 짓눌린 채 소외의 그늘 밑을 외롭게 서성이고 있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자녀들의 응원이 도리어 측은한 동정의 목소리로 바뀌어 아버지들의 가슴을 더욱 축축이 적신다.

 아버지의 기를 살리자는 호소가 아니다. 어버이들이 먼저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는 자성(自省)의 고백이다. 어버이의 삶, 그 속에 담긴 애환은 자녀들의 눈앞에 살아 숨 쉬는 역사 그 자체다. 부모가 자녀들과 신뢰의 한 몸을 이루지 못하면 자녀에게 의미 있는 삶의 기억을 남겨주기 어려울 것이다. 그 고민은 자녀의 몫이 아니라 부모 자신의 몫이다.

 자녀에게 ‘사랑과 믿음의 바탕’으로 인식되지 못하는 가정, 그 가정 안의 어버이만큼 서글픈 자리가 또 있을까. 자녀의 인성(人性)에 관한 한 어버이는 최초의 교사이자 평생의 스승이다. 아버지의 손길, 어머니의 숨결은 아들·딸들의 삶 속에 정신적 유산으로 깊숙이 자리 잡는다. 자녀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기보다 부모 자신이 먼저 이웃과 함께 빵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가정은 나의 대지, 나는 거기서 정신적 영양을 섭취한다.” 펄 벅의 이 고상한 믿음을 자녀에게 심어줄 책임은 어버이에게 있다. 부모님을 다 떠나보낸 지금, 나는 절절한 그리움의 아픔 없이는 아버지·어머니라는 단어를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한다. 그분들은 재산은 별로 없었지만 그 어려운 시절에도 푸근한 배려의 손길을 지니고 계셨다. 영남삼현(嶺南三賢)의 한 분으로 불렸던 이 땅의 토종 자연인 전우익 선생은 투박한 말투의 진실 한마디를 남겼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