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1건에 2조 … 한국도 뛰어든 국제 중재 허브 쟁탈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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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맥스웰 체임버스 심리실 내부. 이곳엔 이처럼 화상회의, 프레젠테이션이 가능한 심리실 14개와 준비실 12개를 갖춰놓고 있다. [김기환 기자]

글로벌 기업 간 분쟁 해결 수단인 국제 중재(International Arbitration) 사건 시장을 두고 아시아 3국이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홍콩·싱가포르가 앞서는 가운데 한국이 27일 서울국제중재센터(SIDRC) 개소를 계기로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다. 핫 이슈로 떠오른 아시아 국제 중재 현장을 가봤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싱가포르 최대 번화가인 맥스웰로드 32번가. 50층 넘는 고층빌딩 숲 사이로 국제중재센터인 ‘맥스웰 체임버스(Maxwell Chambers)’ 빌딩이 우뚝 솟아 있었다. 3층 심리실 ‘Raffles Room’(래플스 룸) 팻말 위에 ‘SIAC 12***’이라고 적혀 있었다. 현재 심리 중인 국제 중재 사건의 고유 번호였다. 심리실 문틈으로 인도식 복장을 한 흑인 여성, 검은색 양복 차림의 동양 여성, 서류를 책상 위로 한가득 쌓아 둔 백인 남성이 대화를 나누는 게 보였다. 중재실에 들어서려 하자 보안 요원이 막아서며 “심리 과정은 전부 비밀이니 출입을 삼가 달라”고 말했다. 다른 경로로 취재했더니 이날 사건은 인도 회사와 그리스 회사 간 선적 계약에서 생긴 국제 중재 건이었다. 분쟁 규모만 2000만 달러(약 220억원)라고 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 분쟁 중이란 사실만으로 주가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극도로 민감하다”며 “기밀 유지를 위해 상대편과 휴게실도 따로 이용하고 음식은 케이터링 서비스를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중재센터 관계자는 “현재 세 개의 중재 사건이 열리고 있고 중재 재판장과 중재인, 회사 관계자 등 50여 명이 센터를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중재 허브는 싱가포르와 홍콩이다. 각각 1991년, 85년 중재센터가 문을 열었다. 두 나라는 중국·인도 등 경제대국과 가까운 지리적 요건, 친기업적 환경, 영국법 영향권에 있다는 장점 등을 내세워 빠르게 성장했다. 싱가포르는 민간 기구인 맥스웰 체임버스가 센터를 운영, 중립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고 이를 중재 사건 유치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홍콩은 설립 초기부터 정부가 적극 지원했다. 사무실 임대료는 물론 각종 국제 중재 홍보 관련 세미나 때도 지원한다. 세금 감면 혜택은 기본. 외국인이 홍콩에서 거둔 이자·소득·부동산세는 15~16.5%가 상한선이다. 림스키 위안 홍콩 법무부 서기관은 “요즘은 중재 관련 법령을 글로벌 추세에 맞게 수시로 개정하는 등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싱가포르는 지난해 235건, 홍콩은 196건의 중재 사건을 유치했다.

 이들 국가가 일찍부터 국제 중재 사건 유치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는 단순하다. 국제 중재 사건 자체의 규모만큼이나 부수적 경제 효과도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에 낸 중재 재판은 가액만 2조원대, 기간이 2~3년 걸리는 ‘빅 게임’이다. 그 기간 동안 양측 수십 명의 고급 인력이 고급 호텔에서 1주~2개월 동안 머무르며 쓰는 비용과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다. 법원이 아닌 제3자(중재인 또는 중재기관)에게 분쟁 해결을 맡기는 중재는 소송에 비해 결과가 빨리 나오고 비용이 저렴한 게 장점이다.

  서울국제중재센터 김갑유 사무총장(변호사)은 “한국은 탄탄한 법률 시스템, 지리적 여건 등 ‘중재 허브’가 될 조건을 두루 갖췄음에도 출발이 늦었다”며 “지금부터라도 국제 중재 유치전에 적극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홍콩=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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