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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켜면 정보 주르륵 … 직장인 63%가 건망증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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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40대 주부 박금자(가명)씨는 자기 집 전화번호를 모른다. 스마트폰에 저장돼 있어서다. 일정도 스마트폰으로 알람을 설정해 놓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대학생 홍길동(가명·22)씨는 지능지수(IQ)가 높은데도 책을 읽고 또 읽어도 머릿속에 안 들어왔다. 고민 끝에 정신의학과를 찾은 결과 스마트폰 중독이 원인일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직장인 정모(35)씨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헤드폰을 한 시간 넘게 쓰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음악을 들으려고 헤드폰을 썼는데 노트북 등에 정신이 팔려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르는 걸 잊어서다. 평소 여러 디지털기기를 동시에 사용하지만 정신은 더 멍해지는 것 같아 고민이다.
 
 요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사례다. 디지털기기가 많아지는 현대사회에서 건망증과 집중력 저하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와 리서치 전문기관 엠브레인이 2007년 직장인 2030명을 대상으로 ‘건망증이 업무에 미치는 영향’을 물어봤다. 그 결과는 의외였다. 직장인의 63.1%(1281명)가 건망증 증세를 겪고 있었다. 이들 중 53.3%(683명)는 정보 과부하로 인한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꼽았다. 또 20.4%(261명)는 휴대전화나 PC 때문에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환경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결국 직장인들의 건망증은 디지털로 접하는 많은 정보와 스트레스, 디지털기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존 때문(논문 ‘디지털미디어 등장과 새로운 위험유형에 관한 연구’ 참조)이란 설명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른바 ‘디지털 치매’일 가능성이 크다. <표1 참조> 그중 일부는 증세가 악화돼 의사로부터 치매 진단을 받기도 한다. 2012년 기준으로 20대 치매 환자는 86명, 30대 환자는 299명이었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19세 이하도 28명이었다. 이는 2008년(19세 이하 14명, 20대 21명, 30대 166명)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경희대 박기정(신경과) 교수의 조언이다. “(치매 직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 중 1년에 10~15%가 치매로 악화된다. 지금 치매라고 할 순 없어도 그런 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치매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치매 환자들에게 6개월 내지 1년간 자극이 많은 환경에 노출시켜 인지훈련을 하면 위축돼 있던 신경세포가 두꺼워지고 신경과 신경세포 간의 연결성(네트워크)이 좋아진다. 디지털 치매도 비슷한 훈련을 통해 뇌의 다양한 부분을 발달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마트폰 척척, 신동인 줄 알았더니 …
인터넷게임 중독이 뇌구조까지 변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11년 국제 학술지 ‘플로스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의 뇌를 조사한 결과 사고·인지를 담당하는 전전두엽과 소뇌의 역할이 비활성화되거나 크기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픽1 참조> 이에 대해 밸런스브레인 장원웅 연구원장은 “전전두엽은 청소년기인 18~21세까지 발달하는 부위인데 이 부분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사고·인지능력뿐 아니라 감정·행동 조절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기기의 과도한 사용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아이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37개월 된 강보람(가명·여)양은 주변에 누가 있든 신경 쓰지 않고 스마트폰에만 집중했다. 처음 보람이 엄마는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스스로 동영상(뽀로로)을 켜서 보기에 신동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언어가 늦되고 반응속도가 늦다는 걸 깨달았다. 병원 검사 결과 ‘발달 지연’이란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대근육·소근육을 발달시키는 운동과 인지적 발달을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초교 5학년 안상민(가명·12)군은 부모가 맞벌이인 탓에 학교가 끝나면 동생과 TV를 보면서 부모를 기다렸다. 그러다 하루 5시간 이상 TV에 노출됐다. 이후 TV 프로그램 하나를 꾸준히 보지 못한 채 여러 채널을 돌리며 자극적인 장면을 찾는 모습을 보였다. 손을 계속 움직이거나 몸을 비틀고 손톱을 물어뜯었다. 동생만 집에 남겨 두고 부모가 간식을 사 먹으라고 준 돈으로 PC방에서 장시간 게임을 하기도 했다. 안군은 부모와 나들이를 가도 동물을 관찰하거나 경관을 보고 즐기는 행동이 짧고 계속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학교에서도 책 읽는 걸 싫어하고 물건을 잘 잃어버렸다. 결국 안군은 아동발달지원센터를 찾아 진료를 받아야 했다.

 디지털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선 외국에서도 다양한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우선 미국 학자들은 미디어 사용이 아기들의 언어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아기 1000명에게 언어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TV 프로그램이나 DVD를 시청하는 아기들이 그렇지 않은 아기들보다 훨씬 더 적은 단어를 알고 있어 언어발달이 늦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별히 개발된 유아용 TV 프로그램과 유아용 DVD도 언어발달 지연을 초래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만 부모가 아기들에게 매일 책을 읽어 줄 경우엔 언어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만프레드 슈피처, 『디지털 치매』).

2015년 디지털 교과서 확대 괜찮은가
학교에 컴퓨터를 도입하는 게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속설도 근거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학자 앙그리스트의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 학교들에 컴퓨터를 도입한 뒤 4학년 학생들의 수학 성적과 고학년의 다른 과목 성적이 모두 떨어졌다. PISA(국제 학업성취도 비교)도 15세 학생 25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컴퓨터 이용시간이 길거나 가정에 컴퓨터가 있으면 학업성취도는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2015년부터 초·중·고교에 디지털교과서를 확대할 예정인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는 “교실에 컴퓨터와 화면을 도입한 것만으로 학습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명백하게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독립적인 연구 결과는 단 하나도 제시된 게 없다. 학교에서 컴퓨터 사용 시 학습 성과에 관한 모든 연구가 컴퓨터업계와 통신사업자들이 스폰서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고 말한다.

 외국에선 디지털기기에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한 규제와 권고사항도 시행하고 있다. 전자파의 위해성을 막기 위한 예방 차원에서다. 프랑스에선 유치원, 초·중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한다. 미국소아과학회는 2세 이하 유아에게는 스마트폰·TV·인터넷을 보여 주지 말라고 권고한다. <표3 참조>

 전문가들은 어른들도 디지털기기의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생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디지털 치매를 막으려면 간단한 정보는 반복해 말하고 쓰면서 뇌기능을 활성화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원(정신과) 강남 을지병원 전문의는 “일할 때와 쉴 때 쓰는 뇌가 각각 다르다. 쉴 때는 자아정체성·대인관계 등에 관여하는 뇌가 활발히 작동하는데 쉬는 시간에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 이 영역의 뇌 발달이 떨어진다. 사용자가 디지털기기 사용시간을 잘 통제해야 뇌가 불균형적으로 발달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도움말 가천대 길병원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최상한 연구원, 서울대 윤대현·곽금주 교수, 이나미 박사, 서울대 보라매 병원 최정석 교수, 서울 성모병원 김대진 교수, 밸런스브레인 대표 겸 변한의원 변기원 원장·장원웅 연구원장, 한림대 병원 홍현주 교수, 경희대 박기정 교수, 강남을지병원 이재원 교수, 굿프렌드 아동발달지원센터 김병준 실장

백일현·류정화 기자 keys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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