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50명 넘는 기업형, 번호 제공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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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42)씨는 ‘로또 전문가’다. 2002년 12월, 국내에 로또가 도입된 뒤부터 꾸준히 로또 당첨번호를 연구·분석해 오고 있다. 그는 “조금만 분석하면 로또 1등에 당첨될 것 같아 부인에게 1년만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게 11년이 됐다”고 말했다. 시작 1년 만에 3등에 당첨되자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해서 그는 지금까지 2등 4회, 3등 60여 회에 당첨돼 3억6000여억원을 받았다. 현재 그는 서울 신내동에 개인 연구소까지 두고 있다. 그는 당첨 비결로 “통계와 촉감을 통한 흐름 파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계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된다”며 “직감에 따른 흐름을 파악해 전 회차 로또번호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쓴다”고 했다. 또 “언제까지 로또 분석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1등이 될 때까지 계속하겠다”고 대답했다.

조씨처럼 일부 개인 매니어들 중심으로 이뤄지던 로또 분석이 2000년대 중반부터 조직화됐다. 나눔로또가 200회차가 넘어가며 일정한 패턴이 나올 정도로 데이터가 축적되면서다. 아예 분석사업으로 부상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검색 결과 로또와 복권을 주제로 한 책은 37권이었다. 대부분 통계적 기법을 사용해 로또 당첨 확률을 높이는 내용이었고, 일부는 1등 당첨자의 해몽에 대한 책들이었다.

로또 당첨번호를 예측하는 전문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22일 오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리치커뮤니케이션(리치컴즈) 사무실. 고객 전화에 응대하는 직원들로 분주했다. 회계팀·경영지원팀·부설연구소·고객센터 등을 갖추고 있었다. 직원이 50명이 넘었다. 증권가에서 ‘미스터 문’이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날렸던 애널리스트 문양근(46)씨가 2006년 초 ‘로또는 과학이다’는 모토를 내걸고 설립한 회사다. 현재 리치컴즈의 회원 수는 150만 명에 이른다. 유료 회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난해 매출은 131억원, 영업이익은 33억원을 달성했다. 명문대 통계학 석사 출신인 김명진 대리는 “공공기관 연구원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전직했다”며 “매주 추출해 낸 번호가 당첨되기를 바라며 희망을 찾아주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기업형 로또 정보업체는 5개 안팎, 조합번호 제공 홈페이지는 80~100개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로또 분석은 타당성이 있을까. 대부분의 수학자는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KAIST 한상근(수리과학과) 교수는 “로또의 각 게임은 독립돼 있기 때문에 분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로또 당첨번호가 편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회차가 늘어나다 보면 결국 그 편향도 균일해질 것이다”고 했다.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를 하면 한순간 앞면이 많이 나올 수는 있지만 계속 던지다 보면 결국 앞·뒷면이 나올 확률이 각각 50% 대 50%로 평균에 수렴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동전을 던져 앞면이 5회 연속으로 나오면 그 다음은 뒷면이 나올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도박사의 오류’다. 로또에 대한 통계적 기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주 나온 당첨 숫자가 또 나온다’거나 ‘안 나왔던 당첨 숫자가 이번엔 나온다’는 가능성 모두 도박사의 오류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연구진이 캘리포니아주 로또 900회차 분의 당첨 숫자들을 분석한 결과 ^자동추첨 ^가장 자주 나온 숫자 공략 ^가장 덜 나온 숫자 공략 등 세 방법 사이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로또 분석가’들도 수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게 이들의 믿음이다. 조영민씨는 “통계학자들은 로또 1등 번호를 분석할 수 없다고 하는데 실전은 다르다”며 “계속 구매하는 사람의 촉과 직감이 있고, 그를 통한 분석이 결과를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수학자들은 ‘복권의 역설’을 강조한다. 복지예산이나 교육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복권사업은 대부분 학력·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주머니를 주로 털어간다는 얘기다. 목포대 박형빈(수학교육과) 교수는 “복권이나 로또는 수학적으로 보면 1000원에 딱 한 장을 사서 한 주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기분 좋게 하는 정도가 최고”라고 말했다.

이철재·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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