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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의 숫자 톱11’서 당첨 번호 몽땅 나왔기 때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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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분의 1이라고 한다. 번개에 맞을 확률 600만분의 1 보다도 낮다. 그런 희박한 확률 속에서 지난주 546회차 로또 1등 당첨자가 30명이나 쏟아졌다. 2002년 12월 7일 로또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 최다 1등 당첨자 수다. 게다가 부산에서는 한 사람이 1등 당첨 번호를 10장이나 적어내 1등에 열 번 당첨됐다. 이로 인해 로또 조작설 내지 음모설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과연 조작이 가능할까. 조작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래픽 이주호

24일 오후 4시 부산시 범일2동 부일카서비스 내 로또 판매점. 지난주 546회 나눔로또에서 한 명이 수동으로 똑같은 번호 10장을 적어내 1등에 당첨된 곳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명당’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로또를 사려고 10m 이상 줄지어 있었다. ‘나눔로또 천하명당’이라는 간판 아래 판매점 유리벽에는 ‘1등 27번, 2등 49번 당첨’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줄 서 있던 한 50대 남성은 “로또 명당이라기에 울산에서 왔다”며 “큰 기대는 안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왔다”고 말했다. 이곳은 문을 여는 오전 8시30분부터 마감을 하는 오후 9시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부일카서비스 권광택 사장은 “많이 찾아오셔서 하루에 몇 분 정도 오는지도 모르겠다”며 “우리가 복이 있어라기보다 복 있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당첨자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단순히 ‘복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라는 말로 1등 당첨자가 많이 나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을까. 많은 이가 로또 조작설을 제기한다. 특히 이번 546회차에서 1등 당첨자가 30명이나 쏟아지자 로또 조작설이 재점화되고 있다. 평소 7대 3 비율로 자동 당첨자가 많았던 것에 비해 이번에 수동 당첨자(30명 중 27명)가 월등히 많은 점도 조작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로또 판매 마감과 추첨 사이의 45분 시간 차 그리고 로또 추첨 후 당첨 정보를 농협에 전송할 때까지 60분의 시간 차를 의심스럽게 보는 사람이 많다. 마감 후 45분간 구매번호를 분석해 추첨 과정에서 조작하거나 추첨 후 60분간 당첨자를 조작할 수 있지 않으냐는 의심이다.

로또 추첨~전송 사이 ‘60분’ 시간 차

로또 조작설이 제기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에도 제기돼 감사원이 로또시스템 전반을 감사한 적이 있다. 결과는 “조작 가능성이 없다”였다. 2008년에는 진수희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로또 총판매금액과 정산금액의 불일치 ▶메인시스템과 감사시스템의 데이터 불일치 ▶감사시스템 간의 데이터 불일치 등 7대 의혹을 내세우며 문제를 다시 제기했고, 결국 2009년 감사원이 재감사를 벌였다. 이때도 “시스템 지연으로 인한 착오가 있었지만 조작은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이 감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로또 조작이 가능한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로또시스템은 판매점 복권발매단말기, 나눔로또 측에서 관리하는 메인시스템과 백업시스템, 복권위원회에서 관리하는 감사시스템 등 4개로 구성돼 있다. 판매점에서 복권을 사면 메인시스템의 복권발매서버에서 판매점으로 복권 발매번호를 부여해 준다. 단말기에서 실제 복권이 발매되면 복권발매서버에서 처리한 거래 데이터가 메인시스템과 백업시스템, 감사시스템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즉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데이터가 메인시스템과 감사시스템에 3가지 형태로 저장되는 것이다.

매주 토요일 오후 8시45분쯤 당첨번호가 나온 이후 나눔로또·복권위원회 담당자는 오후 9시에 메인시스템과 감사시스템에 당첨번호를 입력한다. 그러면 각 시스템은 당첨 티켓의 번호 등 당첨 정보를 생성해 저장하고, 오후 9시40분쯤 저장된 파일을 농협으로 전송한다. 당첨자가 당첨금을 수령하기 위해 당첨 티켓을 가지고 농협을 찾으면, 농협은 실물 티켓에 인쇄돼 있는 티켓 정보가 메인시스템·감사시스템에 생성돼 있는 당첨 정보와 일치하는지 확인한 뒤 당첨금을 지급한다.

따라서 로또를 조작하기 위해서는 ▶추첨시간부터 메인시스템·감사시스템에 당첨번호를 입력하는 오후 9시까지 약 15분 동안 메인시스템·감사시스템에 들어가 거래 정보가 담긴 파일을 동시에 조작한 뒤 신규 당첨 티켓을 인쇄 또는 기존 티켓을 당첨 티켓으로 위조해야 한다. 아니면 ▶추첨시간부터 농협으로 당첨 관련 정보를 보내는 오후 9시40분까지 메인시스템·감사시스템에 침입해 거래 정보가 담긴 파일과 당첨 정보를 담은 파일을 조작한 뒤 그에 맞춰 신규 당첨 티켓을 인쇄 또는 기존 티켓을 당첨 티켓으로 위조해야 한다.

“4개 시스템 동시 위조는 불가능”

2009년 당시 감사원은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시스템의 정보를 동일하게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조작을 시도했을 때 각 시스템의 정보가 불일치할 것으로 보고 의심되는 28개 회차의 정보를 검증했다. 그 결과 데이터의 다양한 정보 요소가 모두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즉 조작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권위원회 관계자는 “조작을 위해서는 짧은 시간 내에 4개 이상의 시스템에 동시 접속해 자료를 위조한 뒤 실물로 인쇄해야 하고 매 단계를 기록하는 출력보고서도 조작해야 한다”며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추첨 과정에서의 조작도 쉽지 않다. 추첨 전 추첨볼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방송사 보관실의 봉인과 추첨볼 세트가 담긴 철제 가방의 봉인을 우선 제거해야 한다. 그런 후 추첨볼을 조작해 다시 동일한 봉인을 설치해야 한다. 단 조작 시 무게·둘레에 변화를 주게 된다면 추첨 전 검사 단계에서 적발된다. 이 과정이 성공한 다음에는 방청객과 경찰관의 참관하에 추첨용 볼세트로 3회에 걸쳐 추첨 테스트를 하는데, 여기에서도 적발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방청객과 경찰관·방송사·주관사가 협력하지 않는다면 추첨 과정에서의 조작은 불가능한 구조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마감시간과 추첨시간, 추첨시간과 당첨자 발표시간 간의 차이는 왜 생기는 걸까. 마감 후 각 시스템이 출력하는 보고서 등을 수시로 대조·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나눔로또와 복권위원회의 설명이다. 또 추첨 방송사의 편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나눔로또 박정기 과장은 “판매 마감 후 방송을 통해 곧바로 추첨하는 나라는 내가 알기로 없다”며 “매주 평균 550억원어치가 팔리는데 이러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일정 부분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등이 일본선 167명, 독일선 134명 나오기도

넓게 보면 확률상으로도 별문제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분의 1. 통상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들 한다. 로또가 매주 5500만 게임이 팔린다고 봤을 때 1등 당첨자는 대략 6~7명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이번처럼 한꺼번에 30명이 1등으로 당첨될 확률은 얼마일까. KAIST 한상근(수리과학과) 교수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며 “유럽이나 미국으로 치자면 1조원짜리 복권에 당첨되기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권,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 목포대 박형빈(수학교육과) 교수는 “확률이 높진 않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독일에서는 1997년 134명의 1등 당첨자가 나왔고, 일본에서도 2005년 167명이 1등에 동시 당첨됐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제23회차 로또에서 23명의 1등 당첨자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로또 조작설을 불러온 제546회차의 당첨번호를 분석해 보면 당첨자가 대거 등장한 이유가 숨어 있다. 546회차 당첨번호는 8, 17, 20, 27, 37, 43 그리고 보너스 번호 6번이다. 보너스 번호를 제외하고 나면 그동안 가장 많이 뽑혔던 톱11 번호(1, 27, 20, 37, 43, 34, 40, 4, 17, 26, 8) 안에 모두 속한 번호다. 수동 당첨자가 27명이 나온 것도 그동안 많이 나왔던 숫자를 수동으로 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545회차 등위별 당첨자 수와 비교해 봐도 이러한 분석이 가능하다. 1등의 경우 545회차 11명에서 546회차 30명으로, 3등은 1497명에서 3110명으로, 4등은 7만7301명에서 10만4469명으로 대폭 늘었지만 보너스 번호를 맞혀야 당첨되는 2등의 경우 42명에서 55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한 명이 같은 번호를 10장 산 것에 대해 로또 분석 전문가 조영민(42)씨는 “매니어들 사이에선 똑같은 번호를 여러 장씩 사는 것이 특이한 일이 아니다”며 “나도 종종 같은 번호로 여러 장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광택 사장은 “양산에서 같은 번호를 지인에게 나눠 줘 3명이 동시에 당첨된 일이 있고 나서 같은 번호를 여러 장 사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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