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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시진핑 석 달 앞당겨 회동, 해킹 논의 급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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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두 사람은 할 말이 참 많았다.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열린 두 사람의 회담은 당초 45분으로 예정됐었다. 하지만 막상 만남이 시작되자 두 사람은 두 배 가까운 85분을 채우고서야 헤어졌다. 언론에 공개된 만남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이 한반도나 이란 핵 문제에서 더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뼈 있게 말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은 “상호 존중과 이익의 바탕 위에서 협력적 파트너십을 구축하자”고 맞받았다. 지난해 2월에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과 시 부주석 간의 첫 대면 장면이었다.

 지구상의 두 거인으로 불리는 두 정상의 회담이 1년4개월 만에 다시 열린다. 이 기간 동안 둘의 신분은 바뀌었다. 오바마는 재선 대통령이 됐고, 시진핑은 ‘부(副)’자를 떼고 명실상부한 중국 국가주석이 됐다.

 미국 백악관과 중국 외교부는 21일(미국 시간)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6월 7, 8일 이틀 동안 정상회담을 한다고 발표했다. 예정대로라면 두 사람은 9월에 러시아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에서나 만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시 주석이 5월 31일부터 6월 6일까지 트리니다드 토바고·코스타리카·멕시코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을 하기로 했다.

 양측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번 회담은 국빈 방문이라는 형식과 의전을 생략한 실무 방문이다. 회담 장소도 백악관이 아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휴양지인 란초 미라지에 있는 고(故) 월터 아넨버그의 24만 평 규모 사유지다. 월터 아넨버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영국대사 등을 지낸 미국의 자선사업가다. 란초 미라지의 서니랜드에 식물원 등을 갖춘 대규모 별장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정상회담이 열린다. 시진핑이 주석직에 취임한 뒤 처음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이 실무 방문으로 열리는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그만큼 두 사람이 실질적인 대화를 하고 싶다는 의미다.

 회담 의제에 대한 양측의 설명도 대조적이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양국 간 현안, 지역 내 문제, 글로벌 이슈 등에 대해 폭넓은 대화를 할 것”이라며 “미·중 관계 앞에 놓인 도전을 되돌아보고, 서로의 차이를 건설적으로 조율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친강(秦剛) 외교부 대변인은 “중·미 정상회담에서 쌍방은 양자관계 및 공통적으로 관심을 둔 국제 및 지역 문제에 관해 광범위한 의견을 나눌 것”이라며 “이번 회담은 중·미 관계의 장기적 발전, 세계의 평화안정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한쪽은 ‘도전’을 말한 반면, 다른 한쪽은 ‘공통 관심사’를 강조한 것이다.

 사전 설명에서 감지할 수 있는 건 미국 쪽에서 일단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 등 미 언론들은 회담 의제로 크게 세 가지를 꼽고 있다. 사이버 보안과 북한 문제, 그리고 위안화 등 경제 현안이다.

 보니 글레이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북한·이란 문제 등 미·중 관계의 현안을 풀기 위해선 아래에서 위로의 버텀업(Bottom up) 방식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의 톱다운(Top down)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 간 논의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교수도 “미·중 간에는 고위급 만남이 잦아야 서로에 대한 이해도 넓히고 쌓인 문제를 풀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 측은 사이버 보안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펜타곤은 지난달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는 사이버 해킹의 진원지로 중국을 공식 지목했다. 북한 문제도 중요한 현안으로 꼽힌다. 미국은 북한의 잇따른 도발을 막기 위해선 중국이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혀왔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은 이런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풀 수 있는 첫 단추인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1기 행정부 4년 동안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과 12차례 만났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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