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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여론조사 입법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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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

대선 당일이었던 지난해 12월 19일. 투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오후 4시20분쯤 e메일 하나를 받았다.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가 보낸 것으로 전날 실시한 조사에서 문재인 후보 51.4%, 박근혜 후보 46.5%의 결과가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투표가 종료된 지 5분 뒤 이번엔 ‘리서치뷰’라는 기관에서 보낸 e메일이 도착했다. ‘문재인 후보, 과반 넘는 50.4% 당선 확실’이란 제목이 달려 있었다. 그땐 이미 지상파 3사가 ‘박근혜 후보 우세’라는 출구조사를 보도한 뒤였으니 리서치뷰의 배짱 하나는 높이 살 만했다. 이런 여론조사가 적중했다면 역사에서 길이 남을 대특종이 됐겠지만 현실은 다들 아는 대로다.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개표 뒤 극도의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은 이처럼 빗나간 여론조사의 영향도 컸을 것 같다. 2007년 대선처럼 처음부터 질 줄 알았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겠지만, 승리를 철석같이 믿다가 뒤집혔으니 얼마나 충격이 심했겠나 말이다.

 그렇다고 해당 기관들이 일부러 엉터리 결과를 내놨을 린 없다. 여론조사기관의 생명은 공신력인데 곧바로 결과가 드러날 사안을 가지고 자해행위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부실한 조사 시스템이다. 여론조사가 정확히 이뤄지려면 과학적인 표본 추출을 하는 게 가장 핵심인데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선 이게 잘 안 된다. 가장 큰 걸림돌은 제대로 된 휴대전화 조사를 실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 네 가구 중 한 곳은 집전화 없이 휴대전화만 쓰고 있다. 앞으로 이 비율은 계속 증가할 게 분명하다. 이런 사람들의 여론을 알아보려면 휴대전화 조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현재 대부분의 조사기관은 유선전화(집전화) 조사와 휴대전화 조사를 병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하고 있는 휴대전화 조사는 문제가 많다. 원칙대로라면 전체 휴대전화 가입자 가운데서 조사 대상자를 골라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조사기관이 전체 가입자 명단을 구할 방법이 없다. 대부분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일부 명단을 확보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입수한 명단 자체가 특정 성향에 치우쳐 있다면 아무리 많은 샘플을 조사해봤자 말짱 헛일이다. 오차범위 운운하는 건 사실 사기나 마찬가지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면 조사기관이 휴대전화 가입자 명부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물론 명부를 그냥 넘기면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지난 16일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이 주최한 휴대전화 여론조사 입법토론회에선 가상의 ‘안심번호’를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통신업체가 조사기관에 진짜 휴대전화 번호를 주는 게 아니라 가상의 1회용 번호를 제공하고, 기관이 가상의 번호로 전화를 걸면 통신업체가 이를 진짜 번호로 중계해주는 방식이다. 지금도 택배기사나 대리운전기사를 부를 때 활용되는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는 대통령 후보를 결정할 정도로 막강하지만 그에 걸맞은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 여론조사 입법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다.

김정하 정치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