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부에서 거지로: 쫄딱 망한 부자들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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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이니아주 복권 잭팟에서 천6백만 달러짜리 복권에 당첨된 윌리엄 포스트는 복권을 현금으로 바꾸기 전부터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많이 생길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단지 그게 어느 정도 일지를 몰랐을 뿐이다.

1998년 2월 24일 '대박'의 행운을 잡은 포스트는(63세) "내 가족들로 말할 것 같으면, 난 그들이 그 돈을 차지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역시나 포스트는 별의 별 짓을 다 당해야 했다. 그의 남동생은 포스트를 죽이기 위해 살인 청부업자를 고용한 혐의로 체포됐다. 또 그의 다른 형제자매들은 포스트를 끈질기게 졸라대서 각종 자동차나 식당 사업 등에 투자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투자한 돈에서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포스트는 "정신 못 차릴 만큼 수 없이 많은 법정 싸움에 휘말렸다"고 말했다.

그의 전 애인은 포스트가 당첨금을 나누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고소했다. 한편 법원은 포스트가 채무관계를 청산할 때까지 그의 당첨금을 조건부 날인증서 구좌에 보관해 둘 것을 명령했다. 결국 그는 채무액을 지불하기 위해 당첨 복권을 경매에 부쳤다. 결과적으로 그가 받을 수 있었던 돈은 그가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침실 세개 짜리 집을 구입하기 위해 사용한 돈을 포함해서 총 2백만 달러 정도였다고 한다.

고작 이 집 정도가 그의 복권 당첨금에서 남은 유일한 것이다. 그 많던 돈은 모두 사라졌다. 각종 소송비용 및 세금으로 돈의 상당부분을 잃었다고 포스트는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흥청망청 돈을 쓴 것도 사실이라고 포스트는 실토했다.

현재 포스트는 월 450달러의 사회 복지 연금과 극빈자를 위한 정부 보조 식량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일과의 대부분을 TV에서 방영하는 고전 영화들을 시청하며 보내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는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이젠 돈이 없으니 그를 귀찮게 하는 사람들도 없다. 이제 그의 집은 조용하다.

그는 만족해하고 있다.

그는 "나는 이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걸 잃어보기 전까지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가톨릭교 신자여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생각에 나는 그 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은 그가 처음이 아니다.
이젠 포스트도 복권 당첨금을 모두 다 날린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 뉴저지 출신의 여인은 두 개의 복권이 당첨돼 총 5백 4십만 달러를 손에 넣었지만 과소비와 선물, 도박 등으로 모두 다 잃어 버렸다. 흔치 않은 경우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돈, 의미와 선택' 연구소의 스티븐 골드바트 공동 국장의 말에 따르면 복권 당첨자중 3분의 2정도가 5년 이내에 당첨금을 모두 탕진한다고 한다.

대부분의 복권 당첨자들이 당첨금을 모두 탕진하게 되는 이유는 이들이 그 돈을 치밀한 계획하에 저축하거나 투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는 "보통의 미국인들은 다달이 빠듯한 급료에 맞춰 살아간다."고 덧붙인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큰 돈이 주어진 사람들은 반드시 재테크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갑작스럽게 생긴 재산을 탕진해 버리는 이들은 복권 당첨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골드바트와 그의 동료 조안 인버스키 디푸리아는 한때 수백만 달러를 벌여 들었으나 첨단산업 경기 거품이 빠지면서 재산을 다 잃게 된 소위 '닷컴 수재'들을 상담하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은 닷컴 기업들에 투자한 소수의 주식 평가 이익들로, 이들은 이렇게 생긴 돈을 사치스러운 파티나 멋진 자동차, 집 등 오락거리를 마련하는데 탕진해 버린 것이다.

"이들은 급작스러운 변화로부터 자신을 지켜내지 못했고, 또 투자를 다각화 하지도 않았다."고 디푸리아는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갑작스럽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벌게 될 줄 예상치 못했고, 또 그렇게 빨리 그 큰 돈을 잃게 될 줄도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많은 경우 갑작스럽게 큰 돈을 잃은 사람들은 심한 충격을 받게 되고 다시 큰 돈을 벌어야겠다는 정신적 압박을 느낀다. 또 일부는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시기를 가지며, 이제 앞으로 어떤 의미 있는 직장에서 어떻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또 일부는 놀라울 정도로 상황에 잘 적응한다고 디푸리아는 말했다.

그녀는 한 20대 후반의 여성과 가진 상담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현금화하지도 않은 스톡옵션으로 5십만 달러 이상의 소득세 채무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막 알게 된 직후 디푸리아를 찾아온 것이다.

디푸리아는 "그녀는 매우 훌륭한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글쎄요, 그 돈을 정말 내 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마음이 좀 홀가분해 졌네요. 이젠 제 친구들도 절 놀리진 않겠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새차를 타고 직장에 나갈 때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퇴근 후 그녀가 살고 있는 중산층 지역으로 돌아갈 때면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그녀는 고립된 느낌을 받았다."

피터 그랜디히는 갑부가 되었을 때도 고립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뉴저지에 마련한 대저택이나 두 대의 경주용 차, 다섯 마리의 경주말 그리고 골프 클럽 회원권 등 그가 돈으로 살 수 있던 것들을 사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주식 투자로 큰 돈을 벌어들인 그랜디히는 "나는 마치 게임을 즐기듯 탐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물품 보관소 책임자로 근무하던 당시 한 경비원이 알려준 주식 투자 정보로 처음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당시 그랜디히는 가족들이 결혼 비용으로 저축해둔 7천 달러를 투자해서 2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결국 그랜디히는 증권 브로커가 되었다. 하지만 상담전화가 전혀 오지않은 탓에 그는 짬짬이 투자 관련 정보 뉴스레터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는 1987년 10월 증시폭락 사태가 있기 전 그의 투자 고객들을 증권 시장에서 빼냄으로써 다시 한번 행운을 잡게 되었다. 약세장을 예상한 이 결정으로 그랜디히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증권계의 총아라는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랜디히는 지역 신문에 뿐만 아니라 TV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유명해 졌으며, 풍족한 삶을 살았다. 그는 당시를 '교만한 삶'이었다고 회상한다.

"당시 나는 주식 거래를 하고 골프나 치며 생활 했다. 당시 나는 물품 보관소 책임자로 있을 때 내가 벌 수 있다고 꿈꾸던 돈 보다 훨씬 많은 돈을 파티를 열거나 선물 사들이는데 썼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교만함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1997년, 자신의 회사를 운영하며 여러 광산업체 투자기금 조성에 주력했던 시기였다. 바로 그 때 브리-X(Bre-X) 금광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영세한 캐나다 광산 업체였던 브리-X는 인도네시아 정글 오지에서 세계 최대의 금광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며 전 세계에서 투자자들을 끌어 모았지만 결국 이는 엄청난 사기극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으로 그랜디히의 사업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을 그만두지 않고 사재를 털어 손해를 메우고자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1년 사이에 전 재산의 75%를 잃었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행동과 욕심에 뒤통수를 맞기도 한다. 그게 바로 나였다."

당시 그랜디히는 너무도 상심해서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만약 자살시도가 불구로 이어진다면 간병인을 살 만한 돈이 없다는 것을 염려해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깊은 절망에 빠져있던 그는 해답을 찾기 위해 나섰다.

그는 책 속에서 해답을 구하고자 서점으로 달려갔다.

처음 그랜디히는 기업 전략이나 정신 건강에 대한 책을 살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가 손에 집어든 것은 성경책이었다. 그랜디히가 스스로 살펴보기에 성경 구절의 25%는 돈에 관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일종의 계시였다. 그는 곧바로 금융 자문 업체인 트리니티 파이낸셜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사를 차렸다. 그랜디히의 사업 파트너는 전 뉴욕 자이언츠 미식축구 러닝백이자 현재 스포츠 월드 교단의 목회자인 리 루손이다.

이 두 사람은 현재 NFL 선수들을 포함한 그의 고객들에게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금융·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알고보니 그랜디히처럼 큰 돈을 벌었다가 모든 것을 다 잃게 된 젊은 미식축구 선수들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NFL 사무국에 따르면 지난 3년 사이 78명의 리그 소속 선수들이 최소 4천 2백만 달러를 사기 당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NFL 선수협회는 올해 선수 및 코치진을 포함한 모든 선수 노조 회원과 계약 맺고자 하는 금융 자문 업체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 및 인증 프로그램을 시행키로 했다. (주의: 누구든지 자신을 금융 설계사라고 소개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이 스타플레이어든 후보 선수든 간에 금융 자문가를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한다. '머니'지가 제공하는 금융 설계사 고용에 관한 기사를 살펴보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편 그랜디히는 자신의 고객들과 또 스스로의 미래를 밝게 전망한다.

"나는 그들의 돈을 관리할 수는 있지만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헛된 생각을 불어넣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번에 큰 수익을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위험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만약 2만 달러로 5년안에 10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싶어한다면 나말고 다른 사람을 찾아가라고 권하겠다."

그랜디히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는 궁궐 같은 집을 갖고 있었다. 나는 연간 15만 달러 정도씩 돈을 낭비했다. 나는 마치 사탕 가게에 간 아이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나의 삶은 그때보다 열배는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NEW YORK (CNN/Money) / 오병주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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