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5·18에 대한 근거 없는 왜곡을 규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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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33주년을 즈음해 근거 없는 북한 개입설이 유포되고 있다. 신분이 불명확한 몇몇 탈북자의 주장이 걸러지지 않은 채 일부 방송과 인터넷으로 전파된 결과다. 내용인즉,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 특수부대의 사주와 개입에 따른 폭동이라는 것이다. 5·18 당시 600명 규모의 북한군 특수부대 1개 대대가 침투해 전남도청을 장악했고, 이를 계엄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는 주장이다. 이게 인터넷 게시판이나 댓글 등을 통해 급속히 전파되면서 윤색에 윤색을 더해 가는 양상이다.

 원래 광주에 북한군이 침투해 폭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당시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의 자기방어 논리였다. 실제 북한군이 선동했다거나, 시위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신군부가 가만 있었겠나.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진압 작전을 주도한 이희성도 나중에 북한군 개입설이 과장됐었다고 시인한 바 있다. 또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신군부가 5·18을 불순분자나 북한의 고정간첩들에 의한 계획적인 난동으로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지금 북한 개입설을 제기하는 이들은 33년 전 신군부가 시도하던 여론 조작을 대명천지에 되풀이하려는 셈이다.

 세월이 흐르고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5·18의 진상과 사실관계에 대해선 이미 정리 작업이 이뤄졌다. 당시의 희생을 바탕으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뤘다는 데는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이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은 희생자와 유족들을 모욕하는 패륜행위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반민주적 도발행위이기도 하다.

 근거 없는 유언비어나 괴담은 과거에도 종종 유포돼 국론을 분열시키곤 했다.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거나,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등의 해괴한 주장이 그랬다. 이번에 불거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북한 개입설도 마찬가지다. 그뿐이 아니다. 요즘 인터넷에선 광주민주화운동 자체를 폄훼하고 조롱하는 글들도 돌아다닌다. 심지어 광주의 희생자들을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으로 비하하는 것도 있다. 이념의 좌우를 막론하고 극단적 선동의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 같은 악의적인 비방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를 크게 벗어난다. 자발적인 정화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제재와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판이다.

 가뜩이나 이웃나라의 우익 정치인들은 치졸하고 어이없는 망언들을 하수구처럼 내뿜고 있다. 우리 내부에도 그에 못지않은 망언을 일삼는 세력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개탄스러운 일이다. 우리끼리 갈등과 균열을 조장해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건가. 이들의 준동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역시 국민 통합과 지역 화합을 위해 뚜벅뚜벅 매진하는 길밖에 없다. 이는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맡겨둘 일도 아니다. 상식과 이성을 지닌 국민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