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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작고도 급한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길을 걷다가 뚜껑없는 「맨홀」이나 하수구를 볼때마다 무서운 생각이 든다. 더구나 하루에도 수많은 시민이 끊일 사이없이 오가는 도심지대에서 아무런 방비도 없이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맨홀」을 보면 아슬아슬한 느낌마저 든다.
지난 겨울 어느날 밤길을 지나다가 입이 벌어진 골목길 하수구에 발이 빠지는 바람에 호되게 넘어진 적이 있다. 다행히 다친데는 없었지만 몹시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결국은 「재수없다」는 결론으로 자신을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옷에 묻은 흙을 털고 한창 걸어가다가 되돌아 생각해보니 이것은 단순히 재수만으로 돌려버릴 문제는 아닌것 같다.
일전에 신문에서 하수구에 빠져 비명에 숨진 어린이의 부모가 서울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사건에 관하여 법원에서 피고인 서울시에 손해배상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제까지 우리 주위에서 이런 사고로 생명이나 신체상의 손해를 입었다는 말은 흔히 들었으나 한걸음 나아가 그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청구를 하였다는 말은 좀체로 듣기 힘들었다.
우리 법률제도상으로는 이런 경우 도로나 하수구 및 수도등 영조물을 설치하거나 관리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제가 그 영조물의 설치 또는 관리에 흠이 있는 때에는 그로 인하여 입은 국민의 손해를 배상하도록 되어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제도를 잘 알지못하여 손해를 입고도 단순히 「재수」에 돌리고마는 경우가 많았다.
시민들의 이런 경향때문인지는 모르나 도로, 하수도나 수도등 영조물을 관리하는 당국에서 너무나 이런 사고에 관하여 무관심하다. 지하도나 육교를 만드는 공사도 해야겠지만 거리에 입을 벌리고있는 「맨홀」이나 하수구에 뚜껑을 덮는 일도 큰 일에 앞서해야 하지 않을까. 큰공사의 그늘에 가리워서 당국의 관심밖에 버려진 이런일이 하루 속히 고쳐지는날 수도 서울의 거리는 한결 명랑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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