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 따라하려면 세원<稅源>부터 넓혀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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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08면

최정동 기자

스웨덴 복지모델의 권위자인 스벤 호트(Sven Hort·63ㆍ사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16일 오후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호트 교수는 “‘창조경제’를 위해 외국 전문가를 데려오는 건 단기적 처방이다. 어린이에게 친화적인 사회(Child Friendly Society)를 만들어 장기적 관점에서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스웨덴 복지국가 형성의 역사적 전개’를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여야 의원들에게 “스웨덴 복지모델은 초당적 협력에 기반한다. 한국에선 정당 간의 신뢰가 부족하다”고 일침을 놨다. 또 “한국은 굉장히 중앙집권화된 국가인데, 중앙집권화된 복지는 창의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걸 많이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스웨덴 복지 모델 권위자 스벤 호트 서울대 교수

지난해 6월 서울대 전임교수로 부임한 호트 교수는 스웨덴 스톡홀름대 사회학과 교수를 거쳐 쇠데르턴대 부총장 등을 지냈다.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고용복지분과 인수위원을 맡았던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스톡홀름대에서 유학할 당시 지도교수를 맡았던 게 인연이 돼 한국으로 왔다. 도시개발과 복지국가 분야를 주로 연구해왔으며 저서로는 『스웨덴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 등이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강연한 소감은.
“복지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지난해 대선 때도 복지가 이슈였다. 지금도 복지 재원과 우선 순위를 논의한다. 복지 관련 법률이나 대안의 종류가 다양해서 완전히 이해하긴 힘들지만 복지에 관심이 많은 건 한국의 미래를 위해 매우 좋은 일이다.”

-한국에선 스웨덴을 복지국가의 대표 모델로 생각한다.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공부해보니 한국은 미국·일본 모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스웨덴 시스템이 좋다’고 말하는 건 쉽지만 그걸 한국에서 실현하려면 재원이 필요하다. 그 부분을 먼저 해결하지 않으면 어려움에 빠지게 될 거다.”

-한국 정당들도 재원을 문제 삼는다.
“실제로는 아무도 그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본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두자’는 건 가장 말하기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하기란 쉽지 않다. 광범위한 세원(稅源)을 마련해야 한다. 유럽에선 모든 사람이 납세자 인식을 갖는다. 한국에서는 세금을 안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소득이 아주 적거나, 탈세 방법을 마련할 좋은 변호사들을 데리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투명해져야 하고 더 광범위한 조세 체계를 갖춰야 한다.”

-스웨덴은 소득세율이 높아 소득의 5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데.
“계산 방식에 따라 다르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아이들의 급식과 보육, 부모에 대한 보살핌 같은 혜택을 얼마나 받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세금을 냈기 때문에 그런 혜택을 받는 것이다. 싱글(미혼자)도 사회에 빚지는 부분이 있다. 당신에게 만약 아이가 없다면 그게 바로 한국의 가장 큰 문제인 출산율 저하의 원인이 아닌가. 한국인들이 사고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사회의 일원이란 걸 더 넓은 개념으로 봐야 한다.”

-스웨덴 기업이나 스포츠 스타들이 무거운 세금 때문에 다른 나라로 떠나는 사례가 많다고 들었다.
“몇몇 스포츠 스타가 돈을 많이 벌어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다시 돌아온다. NHL 선수였던 한 하키 선수는 미국에서 번 돈을 모두 스웨덴 기업에 투자했다. 당연한 일이다. 스웨덴의 법인세는 그리 높지 않다. 결국 세금으로 낸 돈이 얼마나 다시 혜택으로 돌아오느냐의 문제인데 북유럽에서 세금이 높아도 잘 걷히는 건 부패가 없기 때문이다. 안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제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높은 세금을 내는 나라에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할 방안은 뭔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회사 안에서 더 좋은 기술을 가진 사람이 회사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하게 해야 한다. 낮은 세율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더 그 사람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이것이 스웨덴에서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는 방법이다.”

-스웨덴에선 연정(聯政)과 초당적 협력이 복지의 토대가 됐다는데.
“스웨덴 모델은 수백 년에 걸쳐 천천히 발전해왔고 한국의 역사는 역동적으로 전개됐다. 스웨덴에서도 정치적 운동과 정당이 지금과 같이 결합하고, 다양한 관점과 방식이 효율적으로 연계되기까지 쉽지 않았다. 한국은 그런 과정에 있다. 한국에선 대통령이 기본 방향을 지시한다. 스웨덴에선 정치인과 관련 전문가들이 협의 과정을 거친다. 보수 정당은 오랫동안 증세에 반대했지만 2006년 세율 인상안을 받아들였고 부분적으로 성공했다. 사회민주당 등과의 연정에 참여한 결과다. 짧은 기간의 집권이었지만 부분적인 연정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지난번 국회 강의에서 무상급식·무상보육 논의 과정에 국가적 에너지를 너무 소비했다고도 평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장이 되기 3개월 전에 스웨덴에서 만났다. 그땐 사회운동가였고 시장이 될 줄 몰랐다. 2008년 오세훈 전 시장을 만날 때도 도시 개발, 서울 발전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무상급식 얘기는 없었다. 나중에 오 전 시장이 무상급식에 대해 지나치게 앞질러 나가다 큰 실수를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스웨덴에선 한번도 무상급식이 정치적인 또는 독립적인 이슈였던 적이 없다. 전체 맥락 속에서 국가 장래를 위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까 같은 걸 봐야 한다.”

-당시엔 ‘이건희 삼성 회장의 손자에게도 왜 무상급식을 제공해야 하냐’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들 역시 세금을 낸다. 모든 사람이 세금을 낼 수 있게 제도를 만들되 그들도 세금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 납세는 전체 사회를 발전시킬 사회적 자산을 창조하는 거다.”

-한국에선 중앙정부가 복지를 주도하는 반면 스웨덴은 지방정부 중심이다.
“중앙정부가 좋아지려면 지역 사회가 잘 짜여야 한다. 지역 사회 내 유대감이 사회갈등을 줄일 수 있다. 사회서비스의 대상은 어린이와 나이 든 부모, 장애인 등인데 이는 지역사회에 기반한 서비스(community service)이고 복지다. 조세구조를 개혁하려면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나눠줘야 한다. 이를 위해 스웨덴은 지역 간 격차를 줄였다. 부유한 지역에서 거둔 세금은 1차적으로 지역민을 위해 쓰되 남는 부분은 보험회사를 통해 빈곤 지역에 지원한다. 사회안전망과 치안에도 도움이 되고 삶의 질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스웨덴에선 100여 년 전부터 400만 명의 빈곤층 가운데 100만여 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이는 빈곤층에 대한 국가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압박이 됐다. 우리 가족 또한 그 기간에 나라를 떠났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를 어떻게 평가하나.
“박 대통령이 복지 이슈를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원래 보수 정당은 사회복지 문제에 관심이 없는데 그들은 사회서비스를 증진하면 이 부문의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이는 선진국형 경제를 위해 꼭 필요하다.”

-당장 실행 가능한 방법을 하나만 추천하자면.
“어린이에게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거다. 남녀 간의 임금 차별을 줄이고 세금도 동등하게 부과하면 여성들의 수입이 올라가고 세수도 늘어난다. 그러려면 무상보육·무상급식과 같은 사회서비스가 필요하다. 어린이들은 사회 발전을 위한 새로운 것들을 창조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은 10여 년 전부터 인터넷·컴퓨터 분야에서 앞서 왔다. 그걸 놀이기구로 삼았던 당시 어린이들이 지금은 새 기술을 발전시키고 창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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