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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인터뷰] 오하나 양이 만난 이승희 청소년보호위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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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승희(李承姬.47)청소년보호위원회(청보위)위원장은 은근히 강성(强性)이다.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청소년과 관련된 얘기만 나오면 어느새 단호한 표정으로 변한다.

지난해 2월 위원장으로 취임, 청소년 성매매 사범 신상공개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신상공개 때 사진을 포함하고 교사 등 청소년을 상대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성매매 사범으로 확정판결을 받으면 기준에 미달되더라도 공개대상에 포함시키자는 등의 주장을 해 화제를 불러일으켜 왔다.

그런 그를 중앙일보 NIE명예기자 오하나(17.홍익대사대 부속여고)양과 吳양의 어머니 김규복(51)씨가 만났다. 金씨는 서울 경성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다.

이들이 만난 것은 지난달 30일. 설 연휴를 앞두고 추위가 기승을 부린 날이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吳양 모녀는 약속시간보다 40분이나 일찍 청보위가 있는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 도착해 있었다.

평소 듣고 싶었던 얘기도, 해주고 싶었던 얘기도 많았던 李위원장을 직접 만난다는 설렘에 걸음이 빨라졌단다.

오후 3시. 약속에 맞춰 모녀와 함께 들어선 위원장의 방은 생각보다 좁았다. 그의 책상 위엔 청소년 관련 기사 스크랩과 각종 보고서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李위원장이 그중 하나를 집어들고 吳양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고1이라고 했나? 혹시 여기 나오는 '일콜(일일 콜라텍)'이라고 들어봤니? 여기서 애들이 나체댄스 경연대회를 한다는구나. 이런 게 흔하니?"

李위원장의 '투철한 직업 정신'에 범생(모범생) 하나양은 준비해온 질문도 잊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대신 말을 받은 것은 어머니 金씨였다.

"예전엔 일일 호프 같은 게 많았는데 새로운 게 등장한 모양이네요. 이런 거 뻔히 알면서 장소 빌려주는 어른들이 더 나빠요."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 왜 그런 사람들이 사라지질 않는지 모르겠어요."

금세 '엄마들의 합의'가 이뤄졌다. 사실 李위원장도 대학에 다니는 딸을 둔 엄마다.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를 타고 吳양이 드디어 질문을 쏟아냈다.

"신상공개는 어떻게 이뤄지는 거예요." "청보위원장 하시면서 제일 힘든 게 뭐예요" "'원조교제'한 애들도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등. 이어지는 질문에 대한 李위원장의 답변은 자상했다.

"사법당국에서 넘어온 청소년 대상 성범죄 사범의 명단을 가지고 위원들이 토론을 통해 공개자를 확정한단다. 그렇게 신경써서 신상공개를 하는데도 성매매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을 지켜봐야 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지. 그래서 신상공개 제도를 더 강화해야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고-. 참, 성매매를 한 아이들을 처벌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론 어른을 유혹하는 애들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돈이 꼭 필요해서 그러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거든. 게다가 그건 성인과 미성년자의 관계잖아. 그 관계가 잘못됐다면 그건 성인이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닐까."

李위원장의 답변에 吳양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金씨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신상공개 강화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제발 성범죄자의 주소를 공개해 주세요. 지금처럼 동(洞)까지만 공개해선 우리 옆집에 '이상한 사람'이 살아도 알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신상공개가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성범죄 때문에 짓밟힌 청소년의 인권과 신원공개로 침해당한 범죄자의 인권 중 누구의 인권이 더 중요한가는 불문가지(不問可知)잖아요. 위원장님께서 속시원하게 얘기 좀 해주세요."

金씨의 요청에 李위원장은 "그렇지 않아도 주소공개를 포함한 각종 강화책을 준비 중이에요"라고 시원스레 답변했다.

의기 투합한 세 여성이 인터넷의 유해성부터 설 연휴 때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명절 증후군'에 이르기까지 대화를 이어가는 사이 시간은 약속했던 오후 4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위원장의 전화가 울어대기 시작했다. 다음 일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쉬운 표정으로 "반가웠습니다"를 연발하는 吳양 모녀와 일어서는 이들에게 청보위에서 발간한 각종 책자를 챙겨주려는 李위원장에게 마지막 소감을 물었다.

"어려운 자리가 될 줄 알았는데 엄마처럼 자상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오하나양)

"만나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용감하신 분이네요. 우리 청소년들 잘 지켜주실 것 같아요."(김규복씨)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엇나가기 쉬운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이승희 위원장)

정리=남궁욱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 본지는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저명인사나 각 분야 전문가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독자 인터뷰'를 신설했습니다. 독자가 만나고 싶은 인물과 이유, 자신의 경력 등을 간략하게 적어 e-메일 또는 팩스로 보내주십시오.opinion@joongang.co.kr>, 팩스:02-751-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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