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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어? 왜 그게 없지' 입사원서 작은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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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지난 2월 말 한 대기업에 지원한 임모(26)씨는 인터넷상으로 지원서를 작성하다가 당황했다. 지원서에 으레 있어야 할 '최종 학교명'과 '가족사항' 항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빼먹은 것은 아닌지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찾지 못했다.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회사 측에 문의했더니 "그런 것은 이제 안 따진다"는 답변을 들었다.

최근 이렇게 출신 지역이나 학교, 신체 사항 등의 항목을 입사 지원서에서 빼는 기업이 늘고 있다. 서류 전형에서 인사 담당자들에게 선입견을 심어 줄 요인이 될 만한 것들을 미리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2001년 삼성이 그룹 공채 때 입사 지원서에서 ▶학교 소재지 ▶주.야간 과정 여부 ▶부모 생존 여부 등의 항목을 뺀 데 이어 다른 대기업.공사들에도 이런 추세가 확산되고 있다.

취업 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지난달 2일부터 25일까지 국내 매출액 상위 1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예년과 비교해 입사지원서 항목에서 차별 요소가 될 만한 항목을 삭제했다'는 기업이 51곳에 달했다. 절반이 넘는 기업들이 입사 지원서 항목을 수정한 것이다.

삭제된 문항은 '가족사항'(15.0%)에 관한 것이 가장 많았다. 부모나 형제 자매의 직업 등을 따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학력사항(14.3%) ▶신체사항(14.3%) ▶연령(9.6%) ▶종교(8.9%) ▶성별(6.2%) ▶병역면제 사유(5.5%) ▶본적(4.8%) ▶가족 월수입(4.8%) ▶신체 장애사항(3.4%) ▶혼인 여부(2.7%) ▶재산사항(2.7%) 등의 순이었다.

그러나 학력사항을 삭제했다고 답한 기업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주.야간 구분이나 본교.분교 여부 항목 정도만 보지 않고 있어 출신 학교 자체는 여전히 채용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기계.철강 ▶금융 ▶유통 ▶자동차.항공업체나 공기업 등에서 이력서 양식의 변화가 많았으며 ▶조선.중공업 ▶정보기술(IT) ▶석유.화학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과거와 별 차이가 없었다.

이처럼 필수 기재 항목으로 여기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지원자들의 '자기 소개' 난 등이 풍성해졌다. 지난달 입사 전형을 마친 한국중부발전 인사담당 방근운 과장은 "'무난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자기 소개가 줄고 외국어 실력이나 봉사활동 경력을 부각하는 등의 내용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간혹 자기 소개 난에 은근슬쩍 학력을 녹이는 사람들도 있다"며 "탈락 사유까지는 안 되겠지만 감점 요인이 될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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