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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는 벤처 없도록 … 세금·펀드·M&A 3각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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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서울 송파구에서 전기조명업을 하는 김철(54)씨는 김대중(DJ) 정부 때 잘나가던 벤처기업 사장이었다. 인터넷 이용자가 많지 않던 1998년에 이미 인터넷으로 빌딩관리를 자동화하는 홈오토메이션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인력이 대부분인 직원이 30여 명에 달했고 자산이 300억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그는 성공의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파산했다. 김씨는 “벤처기업은 어느 정도 이익이 날 때까지 계속 인적·물적 투자로 비용이 나간다”며 “주식시장에 진입해야 하는데 코스닥 상장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대우증권을 통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다. 하지만 재무제표와 신용등급이 나쁘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국내외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특허까지 받았지만 쓸모가 없었다. 10년간 개발한 기술은 빛을 보지 못했고, 2004년 회사는 문을 닫았다.

 박근혜정부가 15일 발표한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이 잘만 작동되면 김씨의 전철을 밟는 벤처기업인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이번 활성화 대책은 창업단계에 자금을 지원해 벤처기업이 성장하는 동력을 제공하고, 회사가 성숙하면 세금 걱정 없이 기업을 되팔아 재투자에 나서는 벤처생태계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이번 대책은 DJ정부 벤처활성화 대책의 ‘버전 2.0’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DJ정부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신경제(New Economy) 정책’을 빠르게 흡수했다. 인플레이션 없는 경제성장을 추구한 신경제의 핵심 수단은 당시 ‘정보고속도로’라 불린 인터넷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정보기술(IT)의 중요성이 부각되자 DJ 정부는 벤처 육성에 힘을 쏟았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경기침체 탈출에 성공했다. 98년 출범한 코스닥은 벤처 붐의 메카가 됐고, IT강국의 발판을 제공했다.

 하지만 ‘닷컴버블’은 오래가지 못했다. 2000년 4월 미국 나스닥시장 폭락이 신호탄이었다. 코스닥은 2005년 거래소로 통합됐고, 창업 열기가 식으면서 코스닥 상장기업 수는 2001년 171개에서 지난해 21개로 급감했다. 벤처기업인들은 인수합병(M&A) 기회가 있어도 세금 때문에 발목이 잡혔다. 이런 벤처생태계의 병목현상을 없애겠다는 게 박근혜표 벤처 대책이다. 박근혜정부는 창업시장의 복원을 넘어서 활성화를 시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세제·펀드조성·M&A 지원이 총동원됐다. 연간 5000만원을 한도로 에인절 투자의 소득공제비율을 30%에서 50%로 확대하고, 벤처기업 매각에 따른 증여세를 면제해주고, 양도소득세(10%)는 과세를 미뤄 새로운 벤처 투자에 나서도록 지원한다. 벤처시장의 활발한 자금 환류를 위해 대기업에도 벤처기업에 대한 M&A 기회를 확대한다.

 과감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돈이 안 들어오는 것도 걱정이지만 버블 발생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 코스닥이 거래소에서 사실상 분리돼 상장 조건이 완화되면 자칫 작전세력의 투기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3의 시장인 코넥스는 상장 문턱이 낮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더 크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투기와 버블이 발생하지 않게 철저하게 관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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