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호사건 판문점무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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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푸에블로」호 사건직후의 숨막힐 듯한 위기감은, 관계 당사자들의 평화적 해결노력으로 다소 완화되었으나 당사자 쌍방이 수락할 수 있는 최소공약수가 모색되지 않아 사건해결의 장기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예측된다. 그동안 「유엔」안보리 막후를 통한 대북괴 접촉방법문제는 끝내 소기의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의 중재요청을 두 번이나 거부하던 소련이 『「푸」호 사건을 사소한 영해침범사건으로 다뤄져야한다』는 태도표명과 함께 미국과 비공식접촉을 거듭하고 마침내 31일의 북괴부수상 김광협의 판문점회담제의에 미국이 동의함으로써 당사자인 미국과 북괴간의 접촉방식이나마 일단 타결된 일련의 상황은 위기감완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64년 헬기사건상기 >
북괴는 64년 미「헬리콥터」가 북괴상공에서 추락된 사건이 판문점회담에서 처리된 사실을 상기시키긴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협의방식은 밝혀지지 않은 판문점회담개최 합의만으로 사건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된 것으로 속단될 수는 없다. 더욱이 사건해결에 기대되던 북괴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공산권내에서의 반발우려와 북괴의 이른바 자주노선이란 벽에 부딪쳐 미·소의 「유엔」막후접촉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북괴의 자주적 입장을 가장 과시할 수 있고 제3국의 개입가능성이 최소한도로 배제된 형식의 회담이 판문점회담이라면 「푸」호 처리에 있어 판문점회담방식의 전도도 결코 낙관될 수 없다.
하긴 북괴로 하여금 판문점회담방식을 제의케 한데는 소련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관측도 있지만 그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괴의「푸」호 납치에 대해 미국이 군사적 보복조처를 쉽사리 감행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데서 나오는 북괴의 강경한 자세의 배경이 북괴·소, 북괴·중공간의 방위조약에 있다면 소련의 영향력에 대한 북괴의 자주정책에도 스스로 한계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북괴제의는 소영향>
사건직후 미국이 군사적 보복을 감행하는 경우 궁극적으로는 북괴의 대소·중공방위조약이 발동, 소·중공이 개입 않을 수 없는 가능성 때문에 미국이 쉽사리 무력행사를 않을 것을 믿은 소련은 공산권에서의 지도자라는 자신의 위치와 중공으로부터의 비난우려, 북괴의 위신 등을 고려하여 여유있는 태도로 중재요청을 거부할 수 있었다. 미국은 재래식 병기에 의한 한국에서의 제2전선을 펼 형편이 못되며 그렇다고 「존슨」은 11월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핵무기 사용으로 나올 수도 없었다. 더욱이 중공을 견제하는 등의 이유로 당분간은 미·소 공존체제를 버릴 의사도 없다. 그러니 소련은 『「푸」호 사건은 북괴의 내정문제다』하면서 중재요청에 선뜻 응할 필요는 없었다.

<사건확대면 소난처>
그러나 북괴의 「푸」호 납치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건, 북괴가 이 사건으로 ①한국군의 월남증파에의 심리적 견제 ②월남에 집결된 미태평양지역 병력의 분산을 불가피하게 하며 ③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미국의 위신의 추락 등의 1차적 소득은 얻었고, 앞으로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푸」호에서 얻을 수 있는 군사기밀도 탐지하게되면 2차적인 소득을 얻는 셈이다.
이런터에 북괴가 끝내 강경한 태도로 뻗치다가 원산만 폭격 등의 제한된 군사적 보복이라도 당하면 가장 난처한 것은 소련이다. 당분간은 미·소 협조체제를 유지해야하며 월남전에도 직접 개입않은 소련이 한국에서 전선을 펼 의도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 소련의 압력에 대한 북괴의 이른바 자주노선의 한계가 있다.

<휴전위반으로 처리>
이렇게 보면 「푸」호 사건을 「유엔」상정을 일단 저지시킴으로서, 「푸」호 사건을 「유엔」이 다룰 권한이 없다는 그들의 주장에 위신을 세우면서 자주성을 과시하고 자기들「페이스」대로 미국과 직접 협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한국의 지위를 약화시키면서 회담을 선전장으로 이용하려는 것이 북괴의 판문점회담의 속셈일는지 모른다.
이런 방법으로 제3차의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면 사건해결의 탈출구로는 휴전성립이래 쌍방이 서로 수없이 위반했다고 비난해왔고, 따라서 261차에 걸친 휴전위회의 때마다 의제가 되어오다 시피한 휴전협정위반사건이란 의의로 작은 문제로 처리될 여지를 남겨 둘 수도 있다.
여기에 『가벼운 사건으로 다뤄야 한다』는 「코시긴」발언과 함께 작년12월「알라스카」 근처 미국영해를 소련선박이 침입한 사건에서 사과와 5천불의 보상금지불로 처리된 사실을 상기시킨 「고시긴」측근자의 저의가 있는지 모르며 이것이 미·소 협조체제도 유지시키면서 북괴의 이른바 자주노선도 건드리지 않는 한도를 지키려는 소련의 수습방향일지도 모른다. @@이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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