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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문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시|조동일 <문학평론가>
「…어처구니 없는 시인
대회를
광화문 네거리에서나
부산 도때기 시장에서
한번 했으면 특등이 되
겠는데
망할놈의 시인대회는없고
엉터리 시인들이 삼백이
고 오백이되는 이 나라
풍경
제 조국은 좀먹어 들어
가도
시인이라고 히히덕거리고
기묘한 정치들을 한다.
망할놈의 것 침이나 뱉고
고함이나 토하고…』 (박봉자·지평에 던져진 꽃·「신춘시」 12집에서)
그렇다. 오늘날의 시를 두고 이런 분노를 토로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인은 많아도 참다운 시인이 없기 때문에, 시는 흔해도 올바른 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불행하다. 시인에 대한 기대는 「히히덕 거리고- 기묘한 정치들을 한다」는 두 구로 요약되어 있는 치사한 짓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지만 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저해하려는 시도가 많다.
독자는 시에 대해 불만을 가졌거나 아예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경향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무지의 소치도 다른 무엇도 아니고 시의 위기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정확한 판단인데도 시인들은 심각한 반성은 커녕 전래적인 미사려구를 늘어놓으며 시를 무조건 추켜 올리며 일방적으로 이해를 요구하고 있음을 흔히 본다. 시는 위대하고 무엇보다도 높은 가치를 가질 수 있지만 모든 시가 그럴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니다.
위대한 시가 평가받아야 하는 것만큼 사이비시는 준엄한 비판을 받아야 하고 실제로 독자들로부터 받고 있다. 그러니 양심적인 시인이라면 무의미한 변호를 단념하고 이처럼 외치고 나서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시의 위기는 일정한 미학적 입장이 없는 절충주의의 유행에서도 지적될 수 있다. 한동안 맹렬한 기세를 보이던 몇 가지 주장은 대체로 상처투성이가 되어 물러났거나 스스로 쇠퇴해 이따금 단조한 여음이나 들려주는 정도인데 젊다는 시인들이 새로운 길을 열지 못하고 이것저것 엮어 모으는데 열중함을 볼 수 있다.
이른바 「모더니즘」의 상투적인 어법도 적당히 재생시키고 전통적인 정서의 양념도 넉넉히 치고 현실 참여에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듯한 인상을 풍기면서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재치 있게 편곡해 놓은 작품을 도처에서 보게된다. 일정한 수준 작이 대량 생산되는데 그치지 진정한 모색의 소리는 듣기 힘들다.
이 역시 시인 각자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위기를 감추려는 보호책이나 오히려 위기를 더욱 날카롭게 드러내 준다. 이에 반해서 앞에서 든 시는 여러 가지 결함을 가졌다 할 수 있으나 일체의 보호책을 거부하고 나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진지한 자세를 보여준다.
박봉자 씨는 시가 진로를 찾기 위해 어떤 진통을 겪어야 할지를 절실하게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시인이다. 어디로 가야할 까는 아직 확실하지 않으나 거부해야 할 것은 명백하다. @@조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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