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감독 기타노 다케시(66)는 “가족은 누가 보지만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가족의 또 다른 이름이 행복이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각자의 욕망 때문에 서로 간섭하고, 갈등하고, 원망하는 게 요즘 가족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이런 영화 개봉 자체가 기적
천명관 작가의 동명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고령화 가족’(송해성 감독, 9일 개봉)은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콩가루 가족을 다루고 있다. 전과가 있는 백수건달 한모(윤제문), 한물간 영화감독 인모(박해일), 이혼을 밥 먹듯 하는 미연(공효진) 삼남매가 엄마(윤여정) 집에서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파이란’(2001)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이하 우행시) 등 구차한 현실 속의 구원을 그려왔던 송해성(49) 감독은 이번에도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가족은 현대인의 마지막 위안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이런 마이너한 영화가 개봉하게 된 것 자체가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가족영화라는 게 막장이거나, 코미디거나 뻔하지 않나.
“투자자들도 ‘장사가 되겠느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식상하지 않게 찍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우묵배미의 사랑’(1990, 장선우 감독) 같은 하류 인생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이 작품은 밑바닥 인생들의 가족 버전이다. 좋은 배우들이 캐스팅되면서 일이 잘 풀렸다.”
-비주류 감성의 영화치고는 출연진이 화려하다.
“박해일이 ‘지금 나이 아니면 이런 역할을 못할 것 같다’며 캐스팅에 응해줬다. 그 때부터 빛이 보였다. 닭죽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전화에 자살 시도를 멈추는 인모와 같은 심경이었다. 이후 다른 배우들도 줄줄이 캐스팅됐다. 배우들에 기대서 찍은 영화다. 나는 배우들이 놀 수 있는 밑그림만 그렸을 뿐이다.”
-실패한 영화감독 인모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진 않았나.
“흥행에 성공한 ‘우행시’ 이후 준비하던 영화가 갑자기 무산된 뒤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무적자’(2010)를 찍게 됐는데, 내 스스로 행복하게 찍지 못한 영화가 흥행이 될 리 없었다. 영화가 밥벌이 수단이 된 게 아닌가 회의하던 차에 천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실패한 영화감독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보고, 영화로 행복하게 찍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해일 “지금 아니면 …” 출연 수락
-유난히 가족끼리 밥 먹는 신이 많다.
“된장찌개에 다섯 개의 숟가락이 들어가 있는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다. 원래 가족은 식탁을 중심으로 모인다. 식구(食口)란 그런 뜻이다. 엄마가 지지리도 못난 자식들에게 매 끼니 고기를 먹이는 건 ‘너희를 무릎 꿇린 세상과 밥심으로 맞서 싸우라’는 뜻이 있다. 나를 먹여주고, 위로해주는 가족이 있다면 절망하지 않고 나아갈 힘이 생긴다.”
-캐릭터들의 매력이 후반부로 갈수록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원작과 달리 한모가 자기희생을 하는 대목이 있다. 훨씬 악한 소설 속 한모를 그대로 가져가면 관객들이 애정을 가질 수 있겠나. 한모의 희생은 소설을 영화화하면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애초에 미학적 성취를 이루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관객이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글=정현목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J Choice (★5개 만점, ☆는 ★의 반 개)
★★★☆(강유정 영화평론가): 송해성 감독은 역시 지질한 남자를 그려내는 데 탁월하다. 식구 공동체인 가족은 진화가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장성란 기자): 가족이란 질긴 이름. 얼마나 지긋지긋하면서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대상인지. 그 형상화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