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년‥‥흘러간 뉴스의 주인공들 - 매몰 16일만에 살아나온 양창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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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돌아온 앙창선씨」는 광부가 아니었다. 어제의 광부 양씨는 이제 인기를 쫓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다니기에 바쁘다. 갱 속에 15일 동안 갇혀있던 양씨는 플래쉬 세례와 환호성을 들으며 굴 밖으로 머리를 내민 그 순간부터 그가 설 땅은 광산이 아닌 딴 곳으로 마련되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9월22일 양씨가 메디컬·센터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자 여러 곳에서 일자리를 주겠다고 나섰다. 그는 이 따스한 손길을 『구봉으로 돌아가 동료들과 살겠다』는 의리있는 한마디로 거절하고 9월30일 구봉광산으로 돌아왔다. 그는 광원사택 55호에서 직원사택 31호로 옮기고 1개월간의 유급휴가도 받았다.
휴가가 끝난 11월l일 그가 말하는 그의 제3인생은 채광과 서기로 출발했다. 배수부에서 일하던 그가 지상에서 갱 속으로 들어가는 동료들의 이름을 체크하는 안전한 일을 맡은 것이다.
이틀간 근무한 양씨는 11월3일부터 다시 드러누웠다. 허리와 팔다리가 쑤신다면서 20여일간 출근을 못했다고. 결근계조차 없는데 화가 난 광산측은 진단서를 떼 오라고 독촉했다. 『이 무렵부터 양씨에 대해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죠』 직원L씨는 말을 이었다.
『길에서 만나도 제대로 인사도 받지 않는다』 『고작 한다는 이야기가 모 장관을 못 만났는데…』라는 등.
부인 김금순(32) 여인은 집에 있을 때 양씨는 전보다 몹시 맵게 먹었으며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불안해하였다고 말했다. 지난 11월26일 양씨는 김 여인이 청양읍에서 지어온 한약 두 첩을 달여먹고 진단서 떼러가겠다고 집을 나섰다. 어디에 갔다 언제 온다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난 양씨는 그후 보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김 여인은 신문을 통해 양씨가 서울에서 방송국 가요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고 대전으로, 대전서 다시 부산으로 다니면서 맹활약(?)을 하고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고 말했다.
『아프다고 누웠던 사람이 저렇게 쏘다닐 수 있읍니까』 『광산에 반드시 있으란 법은 없으나 태도를 분명히 해줘야죠. 양다리 걸치는 것은 잘못입니다』라고 그의 한 상사는 씁스레한 표정으로 한마디했다.
진단서 없이 앞으로 6개월을 넘기면 그대로 봉급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서 섭섭한 눈치.
그를 살리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던 동료광부들의 입에서도 듣기 거북한 별명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동료광부였던 한 사람은 양씨를 소재로 영화 촬영하러 왔던 모 감독도 이와 같은 양씨의 실 인심을 듣고 몹시 『언짢아했다』고 귀띔했다. 광산촌에선 큰돈인 1백만원을 청양농협에 정기 예금한 양씨에 대한 시기심도 있다고 한 동료는 전제했으나 목숨을 구해준 동료들에게 막걸리 한잔 없었다고 야속해했다.
동네부인들은 사고 전에는 일만 끝나면 집에 돌아오던 양씨가 보름이 넘도록 소식조차 없는데 대해 『사랑한다』느니 『오빠삼자』는 등 해괴한 편지가 많았다고 말하면서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수근대기도. 부인 김 여인은 아버지 보고싶다는 4남매와 함께 보름째 소식 없는 양씨를 오늘은 돌아올까 하고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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