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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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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신입의원 김옥선씨의 경우, 「남장」과 「역전당선」중 어느 것이 더 유명할까.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면, 그는 「남장」을 한 것이라기보다 바로 남자다. 모양만 그런 줄 알았더니, 녹음테이프 속에서 굴러나오는 걸걸한 목소리마저 남자의 그것이다. 모든 매스콤이 마치 약속이나 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 그의 유명은 「상승효과」위에서 빛나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뭏든 그는 드라매틱한 인물이다.
「남장국회의원」은 아득히 기원전에도 있었다. 고대희랍 희극작가인 아리스토파네스는 만년작으로 『여인의회』를 남겨놓고 있다. 그때가 BC392년이다.
새벽녘 아테네의 어느 가로에서 생긴 일이다. 프락사고라라는 부인이 손에 램프를 들고 남장으로 나타난다. 모든 가정의 부인들이 새벽에 그런 모습으로 모일 약속이 되어있었다. 그들은 새벽녘에 의회를 점령하고 남자가 없는사이에 남장 쿠데타를 할 셈이었다.
극은 점점 재미있어간다. 부인들이 술 냄새가 물큰하는 남자들의 옷을 입고 나오는 장면들은 폭소를 자아낸다. 남편이 놓아주지를 않아 혼이 났다는 익살도 쏟아진다. 어느새 얼굴을 검게 태우고 목소리를 걸쭉하게 만든 부인도 있었다. 아침잠자리에서 옷을 잃어버린 남편들의 촌극들은 더한층 웃음거리다.
그 동안 일색의회는 활기 속에서 척척 진행된다. 모든 숙녀의원들은 아니, 남장의원들은 시민의 재산공유제를 부르짖고, 토지의 평균분배를 주장한다. 노예의 공정한 노사를 요구하는 발언이 있는가하면, 어느새 여자의 공유를 규탄하는 흥분의 도가니도 된다. 모든 여성은 남자를 공유하자는 의견에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를 보내기도 한다. 그 당시의 희랍은 이제나 다름없이 유사민주주의의 횡포에 신음을 할 때였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런 분위기 속에서 형식적인 의회를 규탄한 것이다. 『여러분, 빨리 복장을 바꿔라.
오늘부터 나는 부인의 맹주이며, 여러분은 당당한 의원이다.』
프락사고라는 결국 남자의 옷을 벗어 던지라고 고함을 지른다. 희극적 환각에서 깨어나 자의식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김옥선씨는 이제 보령·서천의 지역대표이기보다, 모든 여성을 대신하는 여성야당의원으로서 더 값이 있다. 그에게 「재건 투피스」라도 선사할 여성단체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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