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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둘러싸다'와 '둘러쌓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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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방화로 소실된 숭례문이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눈에 띄는 변화는 일제가 좌우 성곽을 헐고 주변을 길로 만든 이후 도로와 차량으로 둘러쌓인 채 섬처럼 남겨졌던 숭례문의 성벽이 일부 복원된 것이다. 조선시대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 정문으로서 위용을 되찾자는 취지다.

 둥글게 에워싸다는 의미로 ‘둘러쌓다’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둘러싸다’고 해야 바르다. “도성을 둘러싸고 있던”은 올바르게 사용됐지만 “도로와 차량으로 둘러쌓인 채”의 경우 ‘둘러싸인’으로 바루어야 한다. ‘둘러쌓다’는 “수도원 주위에 담을 높게 둘러쌓았다”와 같이 둘레를 빙 둘러서 쌓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도로와 차량을 차곡차곡 포개어 빙 둘러서 구조물을 이룬 게 아니고 도로와 차량이 숭례문을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을 행동이나 관심의 중심으로 삼다는 의미일 때도 ‘둘러쌓다’가 아닌 ‘둘러싸다’를 써야 한다. “화재 책임을 둘러쌓고 관계기관이 볼썽사나운 네 탓 공방을 펼치고 있다” “숭례문 가림막, 국민성금, 관리권 등을 둘러쌓고 끝없는 논쟁이 이어졌다”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모두 ‘둘러싸고’로 고쳐야 맞다.

 헷갈릴 경우엔 ‘둘러쌓다’는 ‘쌓다’로, ‘둘러싸다’는 ‘싸다’로 줄여 보면 좀 더 쉽게 구분된다. “(창고에) 물건을 쌓다”와 “(포장지에) 물건을 싸다”의 뜻을 구별하기는 어렵지 않다. ‘쌓다’는 여러 개의 물건을 겹겹이 포개어 얹어 놓는 것을 말한다. ‘싸다’는 물건을 안에 넣고 보이지 않게 씌워 가리거나 둘러 마는 것, 어떤 물체의 주위를 가리거나 막는 것을 이른다. 이 두 낱말 앞에 ‘둘러’를 붙여도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꽃밭에 둘러쌓인 숭례문의 모습이 더욱 새롭게 다가온다”는 문장에서 ‘둘러’를 생략해 보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꽃밭이 에워싸고 있다는 것이므로 “꽃밭에 (둘러)싸인 숭례문”이라고 해야 바르다. “성문 밖에 또 한 겹의 성벽을 둘러쌓은 걸 옹성이라고 한다”의 경우 바르게 쓰였다. 옹성은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이므로 ‘(둘러)쌓은’이라고 하는 게 맞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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