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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미 정신보건원 증상 위주 정신병 진단 정면으로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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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증상을 근거로 병을 진단하는 것은 정신과 이외의 영역에서는 지난 50년 새 폐기된 방식이다. 증상만으로는 최선의 치료법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미 국립정신보건원(NIMH)의 토머스 인셀 원장이 지난달 29일 보건원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그는 미 정신의학회가 이달 중 발간 예정인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편람 5차 개정판(DSM-5)’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편람의 진단은 객관적 실험에 의한 측정치를 전혀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를 의학의 다른 영역에 비유하자면 가슴 통증의 성격이나 열의 속성을 기반으로 진단체계를 만드는 꼴이다. 환자들은 이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다.”

 보건원은 이 분야 세계 최대의 연구소이고 편람은 세계 정신과 의사와 연구자의 ‘바이블’, 교과서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파문이 크다. 지난주 라이브사이언스, CBS 뉴스, 뉴사이언티스트 등의 매체는 이를 “정신보건원, 정신질환 편람 사용 않기로” “정신보건 바이블 놓고 정신의학계 분열”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사실 편람은 오래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실제로는 병이라고 할 수 없는 불평불만들을 의학적 질병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약품의 새로운 시장을 원하는 제약회사들에 과도하게 휘둘려 왔다는 것이다. 장애의 정의가 넓어지는 바람에 양극성장애(조울병)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이 과잉 진단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있다.

인셀 원장의 이번 비판은 진단체계를 객관적 과학에 기반을 두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근본적이다. 변화의 방향은 정신보건원이 진행 중인 ‘연구영역 기준 프로젝트(Research Domain Criteria Project)’다. 그 목적은 “정신질환의 진단에 유전학, 영상촬영, 인지 과학, 기타 여러 범주의 정보를 통합해 새로운 분류체계의 초석을 놓는 것”이다. 정신 장애는 특정한 패턴의 인지, 감정, 행태를 강제하는 뇌 회로를 포함하는 생물학적 문제이며 증상이 아니라 이 같은 생물학적 문제를 치료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 환자의 치료 전망을 밝게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다. 이에 따라 당장 환자의 진단 및 치료법은 달라지지 않겠지만 정신보건원의 자금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은 이를 반영할 필요가 생겼다고 현지 언론들은 지적했다. 실제로 진단체계 자체가 에이즈나 림프종처럼 객관적 증거 위주로 바뀌려면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된다.

조 현 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