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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경찰은 왜 '전자발찌 성폭행'도 못 막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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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성폭행 전과가 있는 남성이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 또다시 성폭행을 저질렀다. 경찰이 전자발찌 부착자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이러고도 성폭행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 다짐을 믿으라고 할 것인가.

 지난 3일 새벽 수원중부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은 112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출장을 나간 여성 마사지사가 손님 집에 들어간 뒤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현장에 진입하지 않은 채 1시간 동안 밖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는 사이 여성은 남성에게 현금을 빼앗기고 성폭행까지 당해야 했다. 경찰은 여성이 밖으로 나온 후에야 범인을 검거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현장에 있던 경찰관들이 성폭행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고 인질극 가능성 등도 우려해 강제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범인이 이미 두 차례의 성범죄로 전자발찌를 찬 중점관리 대상자라는 점이다. 출동 경찰관들이 만약 이 사실을 알았다면 여성이 나오기만 기다리며 현장 주변을 맴돌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법무부 보호관찰소가 범인의 전자발찌 부착 정보 등을 해당 경찰서에 통보한 것은 열흘 전이었다고 한다. 그 사실이 관할 파출소에도 전달됐지만 출동 경찰관들은 범인을 체포한 다음에야 중점관리 대상임을 알게 됐다. 경찰관들 사이에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이 사건 현장에서 불과 500m 떨어진 곳에서 20대 여성이 경찰의 늑장 대처 속에 우위안춘(오원춘)에게 살해당했다. 같은 해 8월 서울에서는 30대 주부가 전자발찌를 찬 서진환에게 소중한 생명을 빼앗겼다. 경찰은 가택 강제 진입에 관한 지침을 마련하고 전자발찌 부착자 정보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일련의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폭행은 중대 범죄가 아니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탓이다. 경찰의 그릇된 인식부터 바꾸지 않는 한 성범죄 피해자는 계속해서 양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