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조절해 지질 못 낮추면 약물로 합병증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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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틴을 세계 최초 발견한 엔도 아키라 박사(왼쪽)와 서울대 순환기내과 박영배 교수가 이상지질혈증 치료 약물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김수정 기자]

매일 전 세계 4000만 명의 환자가 복용하며 우리나라 성인 인구 20~30명 중 1명꼴로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다. 이 세기적인 블록버스터 치료제가 바로 ‘스타틴’이다. 스타틴은 혈관 속 지방을 조절해주는 약이다. 이상지질혈증(콜레스테롤이 높거나 중성지방이 많은 환자) 치료에 획기적인 신약으로 1970년대에 개발됐다. 의학계에선 스타틴을 페니실린에 견줄 정도로 뛰어난 약으로 평가한다. 지난 4월 20일, 스타틴을 세계 최초 발견한 일본의 엔도 아키라(80) 박사가 내한했다. 현재 도쿄농공대 명예교수로, 한국 순환기학회에 연자로 초청받았다. 노벨상에 버금가는 미 라스카임상의학연구상을 수상했으며, 실제 2012년도 노벨의학상 후보자로 지명되기도 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국내 석학들이 학회에 참석했다. 그는 이상지질혈증에 대해 어떤 지견을 가지고 있을까. 대한심장학회장·한국지질동맥경화학회장을 지낸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박영배(64) 교수와 함께 인터뷰를 가졌다.

-스타틴을 이렇게 많이 복용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만큼 고지혈증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일 텐데….

박영배 교수(이하 박)=재미있는 통계가 있다. 60년대 한국인의 평균 콜레스테롤 수치는 160 정도였다. 그런데 70년대는 170, 80년대는 180, 90년대 190이더니 2000년대 200으로 상승했다. 내가 갓 의사가 됐을 때인 30년 전에는 병원에서 고지혈증 환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이제는 가장 흔한 환자다.

엔도 아키라 박사(이하 엔도)=일본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두 나라 모두 서양식이 유입된 것과 관련 깊다. 고콜레스테롤과 이상지질혈증은 식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지방이 많고 식이섬유가 적은 서양식은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를 쉽게 올린다.

-이상지질혈증 치료 현황은 어떤가.

박=2005년만 해도 자신이 이상지질혈증인 것을 아는 환자는 10명 중 1명도 안 됐다. 이제는 자신이 이상지질혈증인 것을 아는 경우가 42%까지 올라갔다. 치료받는 비율도 비슷하다.

엔도=이상지질혈증 치료는 기본적으로 식습관 조절이 우선이다. 3~6개월 동안 실천해 본 뒤 지질 수치가 개선되지 않으면 약물 치료를 시작한다.

박=이상지질혈증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간 경우가 가장 흔하다. 이때 기본 치료법이 스타틴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성지방 수치만 유독 높다면 ‘피브레이트’ 계통의 약물을 투여한다. 두 수치 모두 올라간 상태이지만 중성지방이 그리 높지 않다면 피브레이트 계통을 쓰지 않고 스타틴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치료 성적은 어느 정도인가.

박=이상지질혈증 판정 후 동맥경화·뇌졸중·콩팥 이상 등의 질병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관리율’은 50% 정도에 이른다. 협심증 등으로 발전한 경우도 스타틴을 이용하면 치료율이 높다. 100명 중 75명 정도가 치료된다.

-스타틴을 발견하게 된 동기는.

엔도=다이이찌산쿄 제약회사에 근무하던 60년대 후반에 회사에서 기회를 줘 2년간 미국 유학을 떠났다. 일본은 콜레스테롤 환자가 거의 없었는데, 미국은 이미 콜레스테롤 환자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그런데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약은 전무했다. 이거다 싶었다. 팀을 만들어 끈질기게 연구한 결과 세계 최초의 스타틴이라고 할 수 있는 컴팩틴(푸른 곰팡이에서 추출한 화합물)을 발견했다. 이후 다이이찌산쿄의 ‘프라바스타틴(상품명 메바로친 정)’이라는 반합성 스타틴으로 개발됐으며, 이는 기존 컴팩틴보다 콜레스테롤 합성저해 효과가 1.5~2배에 이르는 것으로 검증됐다.

-스타틴은 몸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엔도=콜레스테롤은 간에서 합성되는데, 이때 특정환원효소(HMG-CoA reductase)가 콜레스테롤 합성에 관여한다. 최초의 스타틴인 컴팩틴은 바로 이 특정 환원효소 작용을 억제해 콜레스테롤 합성을 막는 것이다.

-부작용은 없나.

박=약은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효과가 있어야 하고, 두 번째는 부작용이 적어야 한다. 특히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는 평생 복용해야 하므로 두 번째 조건이 특히 중요하다. 스타틴의 효과는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된 바 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25~35% 낮추고, 동맥경화에 의한 환자 사망률도 30% 이상 줄인다. 부작용 면에서도 안정성이 입증됐다. 현재까지 보고된 이상반응은 간효소 수치 상승, 근육 통증 등이 있지만 발생 비율이 1% 미만으로 매우 낮다. 게다가 복용을 중단하면 없어진다. 30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스타틴을 대적할 만한 약은 나오지 않았다.

-고지혈증 치료의 향후 전망은.

엔도=스타틴의 효과를 향상시키거나 부가적인 효과를 내는 약물이 개발되고 있다. 현재 ‘PCSK9 저해제’ 등 콜레스테롤 합성에 관여하는 새로운 물질도 발견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임상 단계에서 부작용이 발견돼 수포로 돌아간 약들이 많다. 실제 신약이 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상지질혈증을 예방하려면.

박=약물 치료를 쭉 언급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생활 습관 개선이다. 동물성 식품을 줄이고 1주일에 4~5회, 하루 30~40분 빨리 걷기만으로도 혈관 탄력성이 높아진다. 금연도 정말 중요하다.

글=배지영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이상지질혈증=피 속에 총콜레스테롤·LDL콜레스테롤·중성지방이 증가됐거나 HDL콜레스테롤이 감소된 상태. 비만·당뇨병·음주·흡연 등에 의해 생길 수 있으나 유전적 요인 때문에 혈중지질이 높은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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