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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개혁의 돌직구를 던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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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렬
경제부문 차장

직원 평균 연봉이 8000만원인 A 회사가 있다. 글로벌 일류 기업인 삼성전자(6970만원)보다 1000만원 이상 많다. 물론 정년 보장이다. A사의 퇴직금 규정은 특이했다. 퇴직금을 계산할 때 1년에서 하루만 더 일해도 6개월을 일한 것으로 간주했다. 최고경영자(CEO)나 임원에겐 여기에다 2~3배를 곱해 퇴직금을 산정했다. 임원들은 임기보다 하루만 더 일해도 한 달~한 달반치 임금을 퇴직금으로 받을 수 있는 지독한 누진제였다. CEO에겐 업무추진카드와 별도로 수백만원의 판공비가 현금으로 지급됐다. 최근 공공기관으로 편입된 한 정부 산하기관 이야기다.

 올 초 CEO로 부임한 B씨는 이런 사정을 보고받고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신이 내린 직장이라지만 각종 혜택이 상식에서 벗어났다고 봤기 때문이다. B씨는 개혁에 착수했다. 우선 자신을 포함해 임원들에게 적용되는 퇴직금 누진 조항부터 없앴다. 근속기간에 대한 퇴직금 산정 방식도 일반 기업과 똑같게 만들기로 했다. 현찰 판공비도 없앴다. 직원들은 사색이 됐다. 알토란 같은 특혜들이 날아가게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의 빚이 500조원에 육박한다는 자료가 발표됐다. 공공기관이 빚더미에 깔려서도 임금을 올리고 업무추진비를 펑펑 쓴다는 뉴스에 국민들이 공분하는 일은 이제 연례행사가 됐다. 정작 궁금한 것은 민간기업에선 상상도 못할 이런 일이 왜 매년 반복되는가 하는 점이다. B씨의 사례는 공공 부문 개혁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CEO가 먼저 자기 철밥통을 깨는 ‘자기 희생’이 개혁의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CEO로 가 보니 임금, 복지, 고용은 모두 노사협의로 결정하도록 돼 있더라. 노조가 자기 밥그릇을 줄이는 일에 동의해 줄 리 만무했다. 내 밥그릇부터 줄이지 않고선 개혁이 안 되겠더라.”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실 역대 정부마다 집권 초기엔 공기업 개혁의지가 강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 것 같았던 개혁 의지는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흐지부지됐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은 잡초 같은 생명력이 있어서 뿌리를 뽑지 않으면 금세 되살아난다. 2008년 1억5600만원에서 2009년 1억3700만원으로 떨어졌던 공공기관장 연봉이 2012년엔 1억6100만원으로 튀어오른 것이 그런 사례다. 곽승준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공기업 개혁은 임기 초기만 잘 피하면 된다는 의식이 공기업과 관료사회에 만연해 있다.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없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공기업은 ‘리스크 제로’ 지역에 있다. 경쟁도 없고, 부도 위험도 없다. 부실이 나면 국민 부담이고, 이익이 나면 임직원이 성과급 파티를 연다. 모럴 해저드가 자라기 십상이다. 공기업 개혁은 외로운 싸움이다. 저항세력은 관료사회와 정치권에 넓게 포진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기업 개혁의 돌직구를 던질 때가 됐다.

이상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