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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폭탄 안고 돈잔치 … 1년 판공비 9600만원 쓴 기관장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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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말 기준 295개 공공기관의 부채는 총 493조원. 지난해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약 40%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 어마어마한 돈은 조금만 삐끗하면 ‘부채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 경영을 잘못해 부채를 줄이지 못하면 국민이 세금으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공공기관장들 스스로 허리띠부터 졸라매야 할 터.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공공기관장 연봉과 업무추진비를 1년 새 확확 올린 곳이 수두룩했다. 한 공공기관은 기관장 연봉을 1년 전보다 1억6200만원 올렸다. 전체 연봉이 아니라 인상액만 1억6200만원이다. ‘판공비’라고 불렸던 업무추진비가 1억원에 육박하는 곳도 많다.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이 더욱 심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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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가 많이 늘었는데 공공기관장 연봉이 뛴 곳도 있다. 1일 공공기관 통합경영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www.alio.go.kr)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지난해 부채가 5조3972억원(13.3%) 증가했다. LH(138조1221억원)와 2위 한국전력(95조886억원)에 이어 공공기관 부채 규모 3위다. 그럼에도 예금보험공사 사장 연봉은 지난해 4527만원(17%) 올라 3억1202만원이 됐다. 부실저축은행 대응을 잘했다는 이유였다. 인상액이 웬만한 봉급생활자 연봉 이상이다.

 이에 대해 윤석호 기재부 평가분석과장은 “예금보험공사의 부채가 늘어난 것은 부실 저축은행의 부채를 떠안게 됐기 때문으로 예보 자체의 잘못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보 기관장은 지난해 부실 자산을 잘 관리해 손실 규모를 줄인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해 연봉을 인상했다”고 덧붙였다.

 기관장 연봉이 확 뛴 곳은 예금보험공사만이 아니다. 한국투자공사는 인상액이 1억6200만원에 달했고, 한국공항공사 5696만원, 한국정책금융공사는 4000만원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금융분야 공공기관의 특성상 연봉이 많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금융회사도 아닌데 1년 만에 연봉이 수천만~1억원 넘게 급등하는 것은 공공기관에 만연돼 있는 고질적인 방만경영 DNA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공기관은 원래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므로 부채가 많아도 굴러가고, 기관장 연봉이 많아도 된다는 생각이 공공기관 전체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장들은 업무추진비도 펑펑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위는 한국학중앙연구원장으로 9600만원으로 1억원에 육박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지난해 매출 245억원에 당기 순손실 5억원을 기록했고, 13억5500만원의 부채를 지고 있다. 매출이 수조원에 이르는 공공기관보다 업무추진비가 더 많다. 이에 대해 연구원 측은 “다른 기관은 업무추진비로 잡지 않는 비정규직 지원 격려금 같은 것까지 전부 업무추진비에 포함하다 보니 규모가 커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업무추진비를 많이 쓰는 기관장 2, 3위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7400만원)과 건설근로자공제회장(7200만원)이었다.

 공공기관장의 고액 연봉과 과다한 업무추진비는 역대 정부가 공공기관 개혁에 연거푸 실패하면서 생긴 내성으로 분석된다. 이명박정부에서는 공공기관 부채가 200조원 이상 증가했는데도 기관장 연봉과 업무추진비가 큰 폭으로 뛰었다. 이상빈 한양대 교수는 “이명박정부가 보금자리사업과 4대 강 사업 같은 국책사업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면서 공공기관들은 내실을 다질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이 지닌 493조원 빚이 국가·국민 경제를 위협하는 폭탄이 되지 않으려면 공공기관 연봉 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해 보인다. 예컨대 부채 조정을 기관장의 주요 경영 실적으로 평가해 연봉과 연동시키는 것 등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부채도 잠재적인 국가 부채로 보고 있다. 올 연말에는 공공기관 부채를 포함한 국가 부채가 새로 작성된다. 군인·공무원 연금이 늘어나는 부분을 포함한 정부 부채는 지난해 902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공공기관 부채 493조원을 포함하면 국가 부채는 1400조원에 육박한다. 지방정부의 부채까지 포함하면 1500조원이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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