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투자심리 풀려면 일관된 신호 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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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5년 만에 처음 열린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무역과 투자진흥은 특정 정파를 뛰어넘는 국가적 과제”라며 “기업들이 성장동력에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현실에 맞는 중소·중견 기업에 대한 무역 지원과 투자 진흥책을 주문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추가경정예산과 4·1 부동산 대책을 마중물 삼아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으려면 수출과 설비투자부터 되살려야 한다고 보는 것도 제대로 된 인식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위기는 아닐지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수출증가율은 뚝뚝 떨어지고, 설비투자는 4분기 연속 뒷걸음치고 있다. 한국은행의 “대기업 대출 가운데 22%(48조원)가 잠재적인 위험상태”라는 경고처럼 건설·조선 업종의 대기업들이 뿌리째 휘청대고 있다. 추락하는 부동산 경기에는 간신히 제동이 걸렸으나 959조원에 이르는 가계대출은 여전히 잠복된 뇌관이다. 경제민주화에 편승한 반(反)기업 정서와 갈수록 거세지는 엔저(低) 쓰나미도 걱정스럽다. 하루빨리 경제정책의 목표와 우선순위를 제대로 가다듬어야 한다.

 정치권은 툭하면 기업들에 “보유 현금 52조원 중 10%라도 풀라”고 걸고 넘어진다. 선거 때마다 기업을 전방위로 옥죄는 정치권이 “제발 투자 좀 하라”며 압박하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뒤집어 보면 기업들이 투자를 꺼릴 만큼 국내 환경이 나쁘다는 의미다. 그런 경제를 살리려면 얼어붙은 투자심리부터 푸는 게 우선이다. 불투명성이 제거되고 수익성이 내다보이면 투자를 마다할 기업은 없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규제완화를 통해 첫 단추를 끼우겠다는 것은 올바른 수순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나라로 몰려드는 외국인 환자나 중동지역으로 수출되는 우리 의료시스템을 보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인다. 병원과 호텔이 손잡고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것을 법으로 막고, 주민들 민원 때문에 방을 못 잡은 외국인 환자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엄청난 외화를 뿌리며 해외 기숙학교에 조기 유학을 떠나는 현상에는 눈을 감고, 제주도에 들어선 외국인학교는 질투하는 것도 잘못된 시각이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의 규제완화부터 서둘 필요가 있다. 의료·교육 시장의 빗장만 풀어도 엄청난 일자리와 거대한 신성장산업이 열리게 된다.

 경제는 심리다. 이웃 일본처럼 정치 지도자와 정부가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면 경제 환경이 확 바뀔 수 있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에 자극받아 기업가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이 꿈틀대며 ‘잃어버린 20년’을 딛고 설비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정부가 꾸준히 일관된 신호를 보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기업들의 인식이 바뀌고, 얼어붙은 투자심리가 풀린다. 입법권을 틀어쥔 여야도 기업들의 투자경색을 타박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그동안 경제를 살리고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얼마나 기득권층의 반발에 맞서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왔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