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 또 개츠비 … 때 아닌 번역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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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와 데이지로 나오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오른쪽)와 캐리 멀리건. 개봉을 앞두고 원작 소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진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출판가에 ‘개츠비 대전’이 일고 있다. 진앙지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위대한 개츠비’(16일 개봉)다. ‘스크린셀러’(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시대, 연초 광풍이 불었던 ‘레 미제라블’ 현상이 되풀이될지 주목된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의 하나로 꼽힌다. 현재 서점가에는 40~50종의 번역본이 나온 상태다. 특히 최근 내로라하는 단행본 출판사들이 스타급 번역자·학자·소설가를 내세워 ‘개츠비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표 참조>

 전초전도 뜨거웠다. 영화의 수입·배급사인 워너브라더스코리아와 공동마케팅을 하기 위한 출판사들의 물밑 경쟁이 벌어졌고, 결국 소설가 김영하가 번역한 문학동네판이 선정됐다.

 시장을 선점한 책은 김욱동 한국외대 교수가 2003년 번역한 민음사판이다. 영미문학연구회에서 훌륭한 번역본으로 꼽았을 만큼 원문에 충실하다. 1920~30년대 미국문학을 전공한 김 교수가 당시 미국 상황이나 문학사조 등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풍부한 주석을 달았다. 다소 딱딱하다는 평도 있다.

 소설가 김영하가 옮긴 문학동네판은 한층 젊어졌다. 김씨는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속설에 맞서 피츠제럴드의 변호를 맡겠다는 심정으로 새로운 번역에 착수했다”고 했다.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도 반말로 옮기는 등 젊은 독자를 겨냥했다. 번역보다 번안에 가깝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전문번역가 김석희씨도 ‘개츠비 전쟁’에 가세했다. 그가 최근 내놓은 열림원판은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유려한 문체가 특징이다.

 출판사들은 ‘제2의 레 미제라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연초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빅토르 위고의 원작 『레 미제라블』도 20만 부 넘게 팔렸다. 고전문학 작품으로는 이례적 기록이다. 여기에 영화 ‘화차’ ‘은교’의 흥행으로 원작이 다시 주목받는 ‘스크린셀러’가 문학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영화 흥행에 기대는 판매 전략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는 영화 포스터를 그대로 표지로 쓴 『위대한 개츠비』 새 판본이 나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위대한 개츠비』의 문학성에 흠이 가는 건 아니다. 미국에서도 연 평균 30만 권이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소위 ‘재즈 시대’라 불리던 1차 세계대전 이후 1920년대 미국 사회상을 꿰뚫었다는 평가다. 주인공 개츠비는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 꿈이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그의 모습은 낭만적 이상주의로도 읽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만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겠지”라고도 했다.

하현옥 기자

◆F 스콧 피츠제럴드(1896~ 1940)=미국 소설가. 1920년 『낙원의 이쪽』을 발표하면서 부와 인기를 누렸다. 1925년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로 ‘문학적 천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4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밤은 부드러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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